그대의 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로 시작되는
어는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하네

하찮은 것들의 피비린내여
하찮은 것들의 위대함이여 평화여

밥알을 흘리곤
밥알을 하나씩 줍듯이

먼지를 흘리곤
먼지를 하나씩 줍듯이

핏방울 하나 하나
그대의 들에선
조심히 주워야 하네

파리처럼 죽는 자에게 영광 있기를!
민들레처럼 시드는 자에게 평화 있기를!

그리고 중얼거려야 하네
사랑에 가득 차서
그대의 들에 울려야 하네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대신
모래야 우리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대신
바람아 먼지야 풀아 우리는 얼마큼 작으냐, 라고

세계의 몸부림들은 얼마나 얼마나 작으냐, 라고.


저 쪽

허공에서 허공으로 달리며 그는 말했네
1천 광연이나 1억 광년 저 쪽에서 보면
이 부르튼 지구도 아름다운 별이라고.

아무도 감동하지 않았지만
나는 감동했네

-- 뿌연 광대뼈와 흐린 눈의 우리도 뽀얀 살빛의 천사들처럼 저 쪽에서 보면 아름다운 빛 속에 잠겨 있을 것이네

-- 이 모오든 시끄러움, 이 모오든 피튀김, 이 모오든 욕망의 찌꺼기들, 눈물 널름대는 싸움들, 검은 웅덩이들, 넘치는 오열들, … 몰려다니는 쥐떼들에도 불구하고.

허공에서 허공으로 달리며
우리는 아름다운 별의
한 알의
빛 이라고.


통화

자줏빛 고구마들은 자줏빛 고구마들끼리
상아빛 양파들은 상아빛 양파들끼리
푸른 부추들은 푸른 부추들끼리
속삭이네 속삭이네

구멍 숭숭 포대 속에서
혹은
영하 50도의 냉장고 속에서

이 별의
한 켠
얼며 녹으며.

 

벽 속의 편지
                                - 그 날

이 세상의 모든 눈물이
이 세상의 모든 흐린 눈들과 헤어지는 날

이 세상의 모든 상처가
이 세상의 모든 곪는 살들과 헤어지는 날

별의 가슴이 어둠의 허리를 껴안는 날
기쁨의 손바닥이 슬픔의 손등을 어루만지는 날

그날을 사랑이라고 하자
사랑이야말로 혁명이라고 하자

그대, 아직
길 위에서 길을 버리지 못하는 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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