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야, 천천히 오렴 - 아이와 엄마의 처음들의 기록
룽잉타이 지음, 이지희 옮김 / 양철북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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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블로그가 있는 시대에, 디카나 폰카가 있는 시대에 아이를 길렀다면,

나도 아이에 대한 기록을 많이 남겼을지 모르겠다.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것은,

아이가 뱃속에서부터 의사 표현을 하고 - 먹고 싶은 것을 요구하거나, 긴장하는 느낌을 전달한다.

태어나서 아무 것도 못하던 아이가 금세 엎드리고

아랫니가 나고 기어다니다가 침대를 짚고 서고, 걸음마를 하는 그런 과정을 바라보는 일이 아닐까?

돌이 지나면서 말을 배우고, 심지어 금세 농담도 하는 경우도 있으니..

 

룽잉타이는 독일인과 결혼한 대만인이다.

아이는 아버지를 통해 독일어를, 어머니를 통해 중국어(꽝뚱어)를 배우고,

독일 유치원을 다니면서 스위스어를 배우다가 다시 대만으로 오는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다양한 상황을 겪는다.

이런 경험을 재미있게 쓴 책이다.

 

아이를 기른 경험이 있는 사람도,

아이를 기르고 있는 사람도,

아이를 기를 예정인 사람도 읽어봄 직하다.

 

어떤 경험은 ...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가 없거든.(54)

 

아이를 기르면서 여성은 많은 것을 잃게 된다.

그 기회 비용은 한국처럼 남녀평등지수가 밑바닥인 사회에서는 그 결핍감이 더 크다.

그렇지만, 아이를 길러본 사람만이 표현할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남자의 과거는 엄마인 나의 것이지만,

지금의 그는 온전히 아내인 너의 것이니, 자, 가거라.(57)

 

시어머니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과거에 자신의 아이였던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잉타이의 시어머니는 남편의 어릴 적 앨범을 주지 않는다.

 

독일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하는 건 단 한가지,

노는 것뿐이었거든요. 놀고 놀고 또 놀고...

그런데 마침 아이들을 나란히 줄을 세워 데리고 나온다.(88)

 

대만이나 한국이나 거기서 거기일 듯.

어린이집 폭력 교사는 국가 시스템의 문제다.

<유아교육과>가 있는 국립대학에도 부설 유치원이 없다.

어린이집은 있다.

글자를 가르치고, 경쟁을 시키고, 영어를 가르친다. 미쳤다.

 

신화, 미신, 신앙...

엄마는 아이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엄마 자신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97)

 

어른이 되어 아이의 눈으로 읽는 동화들은 공포스럽다.

안데르센의 이야기는 잔혹한 이야기투성이고,

신화와 신앙은 권력자의 편이다.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게 한다. 아이를 기르는 일은...

 

엄마는 만날 나한테 생쥐 두 마리나 세 마리를 받으라고 하면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잖아.

가끔은 생쥐 한 마리만 받아도 되잖아.

나한테는 생쥐 한 마리만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쥐 딱 한 마리만...(127)

 

그렇다.

아이들은 권리가 있다.

경쟁하지 않을 권리가 있고, 비교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생쥐는 별 스티커 같은 것)

그런 안드레아(안안)에게 동생이 태어난다.

그 동생에게 선물을 사오는 사람의 배려. 인상깊다.

 

오늘은 새로 태어난 아기를 보러 왔단다.

하지만 안안이 첫째니까 안안이 더 중요하지.

에리카가 너한테 선물을 준 다음 동생을 보러 가려는데, 그래도 될까?(152)

 

지혜란 이런 것이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

첫째의 상실감을 배려해주는 마음.

 

재미도 있고

배울 것도 많은 육아 경험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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