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세종이 소리친 까닭은 - 쟁점으로 본 한국사
김육훈 지음 / 푸른나무 / 1999년 12월
평점 :
절판


이 글의 저자는 역사 교사이다. 교사로서 역사를 가르치다 보면, 왜 연대표에 집착하게 되고, 전체적인 맥락과 <쟁점>을 부각시킬 수 없을지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펴게 된 결과물이 이 책이리라.

일제 식민 사관에 의해, 그리고 독재자들의 관점에 의해 유린되었던 역사책. 그래서 이제는 그 용어들이 마구 헝클어진 역사책 속의 쟁점들을 정리하려는 노력은 높이 살 만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 독자를 참여시키고 다양한 사료를 통하여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향성은 옳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고난 결과, 이 책은 그 목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 깊이의 한계일 수도 있고, 독자의 미흡함일 수도 있겠다. 해직 교사 시절에 이런 책에 몰두하였다는 저자가 존경스럽기도 하고, 그것이 학술 자료로서 이 책이 가진 한계를 노정한 작업일 수도 있겠다.

과어에 4.19는 의거였고, 5.16은 혁명이었으며, 6.25는 사변, 동란이었고, 광주는 사태였고, 동학농민은 운동이었다.
이제 4.19는 혁명으로, 5.16은 쿠데타로, 6.25는 한국 전쟁으로, 광주는 민주화 운동으로, 동학은 혁명과 전쟁 사이를 오가고 있다.

간단하지만은 않은 용어들 속에는 집요한 <편가르기>가 숨어 있다.
혁명, 운동에는 긍정적 편들기가,
전쟁에는 객관적 관찰자 시각이,
쿠데타, 사태, 사변, 민란에는 비판적 공격하기의 입장에 서게 되는 것이다.

사관이란 명확하게 편들기의 과정이다.

식민 사관이란, 식민지를 운영하는 자들의 시각에 손을 들어주는 것이고,
독재 사관이란, 독재자들의 시각에 손을 들어주는 것이다.

이 책이 문제제기하는 것은 말하자면, 기존의 식민적, 왕조적, 독재적 사관의 반대쪽에서 문제를 바라보자는 것이었다.

그것이 고조선, 임나 일본부설, 삼국 통일, 발해,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훈민 정음, 당쟁, 대원군, 동학 농민 운동, 3.1운동, 임시 정부 등을 제재로 해서 논점을 모으고 있다.

저자의 기술은 내게는 흥미를 끌기에 역부족이었다는 느낌이다.
한홍구의 대한민국사를 읽으면서 심장을 펄떡거리게 만들던, 그런 역사 인식에 대한 비수가 이 글들에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미 책이 나온 10년 사이에, 한국 사회가 그만큼 어두운 역사의 그늘에 많이 벗어진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역사에서 10년은 아무 것도 아니겠지만, 역사책의 10년은 어마어마한 차이를 보게 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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