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예술신서 48
김태웅 지음 / 평민사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시나리오를 써서 먹고 살기는 참 힘들다. 그 팍팍함이 이 희곡집에선 느껴진다.
그러다가, 이(爾)라는 희곡이 <왕의 남자>란 영화의 대본으로 쓰였고, 천만명을 넘긴 한국 최대의 영화가 되었다. 자, 이제 이 희곡집의 작가 김태웅은 어떻게 살고 있을는지...

불티나 라이타처럼 어디서나 주을 수 있는, 싸구려 인생처럼 묘사되던 그의 삶이 이젠 사법 고시 합격한 사람마냥 돈방석 위에 올라 앉아 나타샤를 끌어안고 있는 거나 아닐는지...

희곡집 안에 묘사된 인물들의 공통점은, 한번 왔다 가는 삶에 대한 고뇌들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마치 불티나 라이타처럼... 소중할 것도, 값비쌀 것도 없는 일회용 인생들...

영화 '왕의 남자'에서는 공길이와 장생의 시각에서 세상사의 허탈함을 그리고 있는 반면, 원작 희곡에서는 <연산>의 고뇌하는 심사가 더욱 깊이있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스펙터클한 장면의 구사에 제약이 심한 연극에서는 연산군의 페이소스가 짙게 느껴지는 장면을 부각시키는 것이 성공으로 가는 길이었을게다.

이 희곡집에서 단연 돋보이는 <이> 외에도, <불티나>는 우리 시대의 고뇌를 잘 담고 있다.

6월 항쟁기를 살아온 사람들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비추이기도 하고, <뜨거운 함성>이 일렁거리기도 하고, <페레스트로이카>를 타고 날아온 백마 나타샤도 등장하여 백석의 나타샤와 오버랩된다.

김태웅은 개그에 집착하는 대사를 제법 많이 구사한다. 하긴 연극에서 재미가 없어서야 연극보러 오라거 하기 험한 세상이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구차해도 남는 자에겐 힘이 생기고, 불안해도 뜨는 자에겐 거칠 게 없는 법>이란 장생의 대사나, <여자들의 비밀 하나를 알려 줄까하는데 들어 보려오? 여자는 말이요, 현실 앞에서는 지독할 정도로 냉혹하다오. 앞뒤 따져서 이득이 없으면 가차없이 쳐낸다오. 그게 수태하는 암컷의 힘이고 미덕이라오.>하는 녹수의 대사는 곱씹어볼 만한 멋진 대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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