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논어에서 얻은 것 - 삶이 흔들릴 때 나를 잡아주는 힘
사이토 다카시, 박성민 / 시공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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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에서는 마음을 '반성하는 대상'이라고 보았고

또 그것은 '만들어 가는 것'이란 의미가 강했다.

감정, 즉 그저 그곳에 있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 마음이라는 대상을 만들어가는 토대를 세우는 작업이 바로 '배움'이다.(115)

 

이 책의 장점은 이런 것이다.

논어를 두루뭉술한 처세술로 읽으면 안 된다.

논어에서 '학이시습지'를 강조하는 바는 이것 때문이다.

 

군자는 반드시 학인이어야 한다는 것.

현실을 반성하고 현실에 참여하면서 만들어가는 것.

몸으로 끼어들어야 하는 것.

그것이 '배움'이다.

 

공자는 '인 仁'을 타고난 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처음부터 타고난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디까지나 기본적으로 그것은 배움을 통해 다다를 수 있는 경지다.(116)

 

현실에서는 자신은 하기 싫으면서 남에게 시키는 일이 얼마나 흔한지 모른다.

자기 동네에 원자력 발전소를 짓지 않으면서 765K의 송전탑을 세우고,

저 시골에 THAAD를 배치하고,

강물이야 썩든 말든 로봇 물고기로 연구원이나 구속되고,

남의 집 딸들은 몇백만원이면 희롱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

 

공자가 생각하는 '배움'은

스포츠나 무예를 익히듯

신체적인 기능을 연마한다는 의미의 '기를 몸에 익히는 것'(123)

 

공자 시절의 학문은

교과서를 파고

인강을 듣는 일이 아니었다.

가르침은 출제자와 결탁하여 문제를 누출하는 일이 아니었다.

 

공자를 새로 해석하지 않고서는,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의 차별의 질서로 여기고서는,

새 시대는 오지 않는다.

 

이 책은 '논어'를 찬찬히 풍부하게 읽게 하기보다는,

자기 나름의 관점으로 논어를 즐기는 법을 알려준다.

 

지천명의 나이에,

새삼 논어를 들어야 할 이유다.

 

지식과 기능이 합일된 것을 플라톤은 '자기 현존'이라고 한다.

몸으로 실천하지 않는 '지식'은 낡아간다.

'벗'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세상을 개혁하지 않는 지식은 낡은 것이다.

그 '지식'은 공자 시절의 '예(절)'과 같이 몸으로 익히는 것이다.

 

이화여대의 횡포 앞에 플래시 시위를 벌이는 일이나,

성주 군민들 앞에서 '싸드만이 외부세력'이라는 김제동의 연설을 듣는 일이나,

모두 '자기 현존'을 위한 공부고, 배움을 통해 仁에 다다르는 공부다.

 

인간은 시를 통해 선한 마음이 샘솟으며,

예를 통해 안정을 찾고

음악을 통해 완성된다.(184)

 

예,악을 중시한 이유인데,

시와 예,악이 모두 공부이자, 인을 완성하기 위한 과정이다.

 

'시바 료타로'는

메이지시대 일본인을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지만,

그 후로는 일본이 점점 이상해졌다고 여기는 듯 합니다.

평론가는 나쓰메 소세키 등을 '소독 세대'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논어, 맹자 등 고전을 음독으로 읽으며 인격을 형성했던 세대라는 말입니다.

아큐타가와 류노스케 이후를 교양세대라 부릅니다.

양쪽이 전혀 다르다고 보는 감각이 있었던 것이지요.(218)

 

그 교양세대는 '자위대'를 전쟁할 수 있는 군대로 만들고,

'위안부'는 창녀로 취급했고,

중국, 한국과는 쉼없이 영토 분쟁을 일삼는다.

 

양심적으로 사죄의 말을 좀 넣고 논어를 놓하는 일도 괜찮을 법 한데,

일본의 흐름과 논어의 흐름은 좀 많이 어긋난다 싶다.

제대로 '호학'했다면, 이 책이 좀더 의미있는 책이 되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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