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박사는 누구인가?
이기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행정동'의 그들에게서는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다.

'밀수록 다시 가까워지는' 자동차에서는 인간적인 기록과 표면적 기록 사이에서 기형적 삶이 파생된다.

 

결국 인간은 '본질'이나 '형식'으로 존재하지 않고,

'당신의 이야기'라는 실존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세상은 얼마나 사람을 좌익으로, 보수당으로, 민주인사로, 고위 관료로 판단하는지...

 

늘 어리숙한 인물들을 통해 세상을 비틀어 보기 좋아하는 이기호의 목소리는

'화라지송침'의 기종 씨로 형상화된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참아내고 있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지금 참아내고 있는 그 무엇으로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증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누가 어떤 괴물 같은 짓을 하더라도,

그것을 누가 참아내고 있는가,

누가 그것을 견뎌내지 못하는가,

그것이 우리의 현재를 말해주는, 숨겨진, 또 하나의 눈금일 것이다.(322)

 

화라지는 '옆으로 길게 뻗어나간 땔나무'이고 '송침'은 땔감으로 쓰기 위해 말려둔 솔가지이고,

화라지 + 송침 = 땔감이라는 뜻이다.

우리 존재가 땔감처럼 1회용이라는 이야기일까.

 

비로소 가려져 있던 어떤 부분이 내 안에서 훅,

두루마리 휴지의 마지막 몇 마디처럼 풀려버렸기 때문이었다.(315)

 

삶의 비의는 훅, 풀리기 힘들다.

그렇지만, 또 어떤 고리인가가 그렇게 후루룩 풀릴 수도 있는 것이다. 좋은 비유다.

 

김 박사님... 이 개새끼야.

정말 네 이야기를 하라고!

남의 이야기를 하지 말고.

네 이야기.

어디에 배치해도 변하지 않는 네 이야기 말이야.

나에겐 지금 그게 필요하단 말이야.

김 박사, 이 개새끼야.(130)

 

상담자인 김 박사는 누구일까?

독자인 나는 작가인 이기호를 그 자리에 넣고 싶어지기도 하고,

아이들을 상담하는 나를 그 자리에 넣어 보기도 한다.

개새끼이긴 마찬가지다.

 

자기 이야기를 하기는 쉽지 않다.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를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결국 남의 이야기일 따름이라는 자괴감.

그 이야기는 별반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부끄러움이 묻어난다.

 

뒤로 가는 자동차의 패킹을 하나 빼버린 삼촌.

그를 이해하는 인문학적 정비소 직원은...

 

- 아무래도 엔진에 무리가 덜 가지 않겠수?

원래 잡다한 기능들 때문에 제 기능들이 망가지는 법이라우.

사람들이 그걸 몰라서 그렇지.(81)

 

80년대의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 운동의 변두리에서 차계부를 적던 삼촌을 이해하기 힘든 지점에서,

엔진에 무리를 덜 가게 한다는 따스한 한 마디는,

당신이 누구이든,

누구 편이든,

이기호의 이야기들을 더 읽고싶어지게 만드는 힘을 느끼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