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 김홍도 열화당 미술책방 23
오주석 지음 / 열화당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주석은 김홍도를 특히 사랑했다. 편애라고 해도 그분도 인정하실 것이다.

그렇지만, 김홍도의 그림을 전격적으로 모아둔 이 책을 보면 ‘어찌 김홍도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김홍도는 집안 내력으로는 화원이 될 수 있는 배경이 일절 발견되지 않는다.

집안의 세업으로 그림에 종사해 온 여타 화원과 달리 순전히 자신의 천분과 실력만으로 화원 세계로 진입한 작가인 것이다.


그리고 김홍도의 화가로서의 세계는 정조 임금이 사랑과 불가분의 관계다.
정조 임금 가는 곳에 김홍도는 늘 기록자로서 따라다닌 셈이다.

그러다 보니 그림의 종류도 국왕 행차에서부터, 각종 풍속도, 무예도보통지의 예화, 용주사의 탱화까지 걸치지 않은 곳이 없다. 그야말로 조선의 모든 분야를 통달한 화가라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그의 서당, 씨름 같은 풍속화는 오히려 그의 대표작이라기 보다는 그로키에 가까운 작품이다.


선비로서의 김홍도, 그리고 시, 서, 악에 두루 능통했던 김홍도를 이처럼 잘 드러낸 책을 찾아 보긴 힘들 것이다. 그만큼 오주석은 김홍도에 천착한다.


이 책을 접하면서 아쉬운 점은, 오주석의 말발이 이 책에선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주석의 <그림 읽어주기>는 얼마나 쫀득쫀득한 입말의 맛이 살아있는가. 그림을 부분부분 확대해 가면서 그림을 읽어주는 오주석의 독특한 책맛이 없는 것은 이 책이 열화당 미술책방의 시리즈로 나온 것이어서 편집자의 의도가 강하게 들어간 것이라 많이 아쉽긴 하지만, 김홍도의 그림 세계를 전망하는 일은 분명 즐거운 일이었다.

23,000원이란 값은 이 책을 사기에는 분명히 비싼 가격이다. 그리고 오주석이란 이름을 보고 사서는 안 되는 책이 이 책이다. 그렇지만 나처럼 빌려서, 그의 가계도 같은 재미없는 부분은 휘리릭 넘기고, 그림에 대한 이야기나 한시를 감상하기에는 아름다운 책이다.

조선 시대 사람들은 풍류를 아는 사람들이었지 않은가.


그의 여러 화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마상 청앵도의 화제 한 수.


어여쁜 여인이 꽃 아래서

천 가지 가락으로 생황을 부나

운치있는 선비가 술잔 앞에

밀감 한 쌍을 올려 놓았나

어지럽다 저 황금빛 베틀 북이

수양버들 물가를 오고 가더니

안개와 비를 이끌어다

봄 강에 고운 깁을 짰구나!


이 책에서 처음 만난 <염불서승도> p.240는 그 서느러운 스님의 뒷모습이 정말 매력적이어서 한 장 확대복사해서 책상 아래 넣어 두었다. 스님의 뒷모습을 만날 때마다, 에밀레 종소리를 마음 속에 울릴 일이다.




그리고, 사람은 골똘히 생각하는 것이 눈에 자주 밟히는 법인가.

법정 스님의 책을 읽으면서, 말을 삼갈 것을 마음에 두었던 탓인지... 이 책에서 유독 눈에 띄는 그림은 <신언인도> p.99 였다. 말을 삼가는 사람의 그림.

조전비(예서의 하나)체로 쓰인 화제도 멋들어지지만, 차분하게 두 손을 모은 그림이 단아하다. 화제에 ‘이는 옛날 말을 삼가는 이의 그림이다. 말을 삼가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로 시작하는 말이,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하던 시조를 떠오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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