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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지 않음, 형사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3월
평점 :
가끔은 기억이란 것을 태워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번 아웃'이라 하면 좋을 듯 한데,
번 아웃 신드롬이란 것은, 기력을 소진한 듯 무기력해지는 상태를 뜻한다고 한다.
멘인블랙에 나오는 '상실봉'처럼 번쩍 뒤에 모든 것을 놓아버린다면...
산다는 일은, 기억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 듯 싶은데,
이 책에서는 재미있는 기억 관련 추리들이 펼쳐진다.
찬호께이의 홍콩 여행은 잔혹하면서 흥미롭다.
뇌의 어떤 부분 기능에 손상을 입으면,
자신은 합리적인 추론이라고 생각해도
사실은 착각일 가능성이 크지요.(242)
소설이니 망정이지,
현실이라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내가 나라고 여기는 나는 내가 아니고,
내가 처치하겠다고 이를 갈던 넘이 나라면,
그리고 나를 돕던 사람이 나를 해치려 들고,
그런 사고들이 모두 반전이 있다면...
상상 실험이니 망정이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면, 또 완전 허무맹랑하지만도 않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안다는 것이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 사실인지...(282)
그렇다. 인간의 관점은 자기 본위로 생각하게 마련이므로,
늘 사고를 유연하게 가져야 한다.
인간의 대뇌는 아주 기묘한 기관이라서
무지개를 보면 직전에 비가 왔다고 생각하고,
깨진 유리창과 돌을 보면 누군가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깼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시시때때로 대뇌에서 비어있는 부분을 보충한다고 해요.(285)
이런 이야기는 흥미진진한 심리학 책을 보는 듯 하다.
단서를 발견하는 것은 트럼프 카드를 뒤집는 것과 같다.
엎어둔 카드를 뒤집으면 어떤 패인지 알게 되는 것처럼,
새로운 단서가 발견되면 각각 독립된 단서들이 서로 연결되는 것이다.(157)
맞다.
카드 놀이가 재미있는 것이,
아무리 낮은 카드라도 트리플이 되고 포커가 되면 가장 높은 에이스를 이길 수 있다.
혼자서는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독립된 것들이 연결되어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 생각들이 그런 것이다.
그래서 고정된 사고는 틀릴 가능성이 많다.
맥락 속에서 연결되어 의미를 드러낼 때만 전체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
이 소설은 막간을 이용해서 설명하는 부분도 재미있다.
시점을 역전시켜 문제가 되는 상황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이야기를 진전시킨다.
그 부분을 회색 색지로 넣은 것도 좋다.
상처를 계속 마음에 담아두면 안 돼요.
아물지 않거든요.
가장 심각한 감정적 손상은 한 번도 논의되지 않은 상처다.
오직 입 밖에 내어 말을 해야만 치료의 효과가 있다.(144)
드라마에서 '화병'이나 '황혼이혼'은 이런 것과도 연관이 있다.
희생과 정성의 이름으로 담아두기만 한 인생.
'은근과 끈기'를 주입하며 살아온 상처투성이의 손상.
말하고 논의되어야만 치료의 시작이 열린다.
삶은 짧으니 말이다.
홍콩 사람들은 정신병을 소홀히 여기는 경우가 많다.
바이는 여러가지 정신질환에 대해 사람들이 좀더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홍콩은 삶의 리듬이 몹시 빠르고 급박하게 흘러가는 사회다.
고밀도와 고도 스트레스의 환경 속에서 심리 장애는 무서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101)
홍콩을 한국으로 바꿔도 성립하는 방정식이 아닐까?
홍콩 못지 않게 급박하고 스트레스가 많은 사회에서 살아온 사람들.
무서운 문제는 이미 많이 일어나고 있다.
위험한 사회일수록
추리물을 더 읽어야 한다.
추리물을 무시하는 사회일수록, 위험할 가능성이 크다.
이해의 폭이 제한적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