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메는 강산 가슴에 곱게 수놓으며
문익환 / 사계절 / 1994년 4월
평점 :
절판


우리말의 '선생'이란 말은 참 좋은 말이다. 교사는 교육을 담당하는 전문가를 가리키는 지시적 용어이지만, '선생'은 먼저 태어난 사람이란 의미다. '억지로 가르치고 기르는' 사람은 학생이란 대상을 필요로 하지만, '먼저 태어나 지혜와 경륜을 갖춘 사람'으로서의 선생은 배우는 학생의 성장을 '지켜 보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전통적인 교육관에서 '선생'은 '아비, 군주'와 동렬에 올릴 만큼 1차적인 관계라고 할 수 있겠다.

문익환 목사님은 노구임에도 감옥엘 제집보다 많이 들락거리신 분이다.
간도 명동에서 나시고 통일 운동에 앞장서신 분이다.

김영삼-김일성의 정상 회담을 앞두고 김일성이 갑작스레 사망한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지만,
늦봄 선생도 바로 다음해, 유명을 달리 하고 만다. 이 땅의 통일에 노둣돌을 놓으신 분의 가심은 안타까움만 더할 뿐이었다.

떨림이 없는 사랑은 교만이요, 사랑의 미명으로 짓는 횡포다. 건방진 정원사가 제가 나무를 자라게나 하는 것처럼 으스대는 주제넘은 사랑이요, 사랑 아닌 사랑이라는 말... 두고두고 새길 말이다.

[욥기]의 고난을 겪으면서 지르는 아우성에 대해 읽으면서, 그 수난사를 다시 읽어야겠단 생각을 한다.

감옥에서 보내신 그분의 절절한 편지글에서 가득 묻어나는 향기는 <사랑>의 향기인데, 노년에 밝히신 그 사랑의 본질은 바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은 생명 사랑>이라는 것이다.

[묵시록]에서 새 예루살렘엔 성전이 없다고 하셨는데, 이는 종교마다 뗏목이 따로 있지 않다는 이야기이고, 이 곧 금강경의 진리가 아닌가... 아, 종교의 뗏목은 강을 건너면 모두 필요가 없는 그것이로구나.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며 휴전선을 베고 잠드신 늦봄 선생님.
남과 북의 차이는 파도에 불과한 것으로 바다 밑의 해류는 도저히 흐른다는 신념은 선생의 곧은 지조의 중심을 느끼게 한다.

포스트 모더니즘 작품을 연기하는 배우 아들에게 '모든 가치를 상실한 시대의 인간상'을 드러낸 생명 모독, 멸시로서의 포스트모던이 아닌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드는 훌륭한 아버지.

그분은 모든 생명의 모범이었고, 모든 종교인의 귀감이었다.
그런 분들을 감옥 안에 모셔 두고, 가르침을 외면했던 어두웠던 시대가 진정 어둡기만 했던가.
어둠 속에서 온 몸을 불살라 스스로 빛이 되신 그분들께 감사드릴 일이다.
늦봄 선생을 따라 장준하까지 흐르는 여정은 힘겹지만 즐거운 길이었다.
선생의 목소리가 워낙 다정다감하고 논리가 해박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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