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 통신 2006 - 2호                                   부산공업고등학교 2학년 금속과 2반

내가 누구인지, 생각하는 사람이 되자


반갑다. 

옛말에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이란 말이 있다.

봄이 왔지만 봄같지 않다는 말이다.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렴.

봄이란 건, 따뜻하기만 할 것 같지만, 사실은 겨울부터 여름으로 넘어가는 스펙트럼의 다양한 지점을 봄이라고 한다. 그런 걸 분절적으로 일컫는 말이 ‘봄’이다.

‘봄’은 ‘보다’라는 말에서 파생된 말이라고 한다.

볼 만한 꽃이 학교 곳곳에 만발하는 계절이다.

운동장 아래 벤치 위로는 벚꽃이 만개하였고, 이름도 잘 모를 붉은 꽃송이들이 교정에 가득하다. 저희들을 보아 달라고 저렇게 아름다운 빛깔을 내세우고 있는데, 좀 봐 줘라.

우리 위로 푸른 하늘이 열려 있고, 바로 내 등 뒤에 푸릇푸릇한 새 순이 손짓을 하는데, 모른 체 살아가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2학년이 된 것도 한 달이 지났다.

올해 우리반은 아직까지 결석이 한 번도 없는 훌륭한 반이다.

선생님은 요즘 아침 조회 들어올 때마다, 정말 기분이 좋다. 깨끗한 출석부.

좀더 욕심을 낸다면, 일년 내내 결석이 없는 학급을 만들어 보자. 그건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이루는 것이니깐. 결석은 진학과 취업에 좋은 것이 없으니, 건강한 몸을 유지하기 바란다.


시인 엘리어트의 ‘황무지’란 시에 이런 구절이 나온단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첫 구절은 아주 유명한 말이다. 그런데, 4월이 왜 잔인하다고 했는지는 사람들이 잘 모른단다. 겨울의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워내는 봄비를 아름답다고 하지 않고, 왜 가장 잔인하다고 했을까? 이 시인은 말한단다. 겨울은 오히려 하얀 눈에 덮여 포근했던 휴식의 시간이었다고. 이제 봄이 되어 온 세계의 생명들은 힘든 일생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라고.

우리 삶은 고통으로 일관된 것이란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쓰는 편지글은 ‘내가 누구인지, 생각하는 사람이 되자’라고 제목을 붙였다.

너희가 알아야할 대부분의 상식은 열 살이 되기 전에 다 익혔단다.

부지런하게 살아라. 책을 읽어라.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라. 지각하지 마라.

선생님이 열 여덟 너희에게 그런 잔소리를 해서는 안 되겠지?

오늘은 46년 전, 이 땅에서 있었던, 잔인했던 4월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너희가 4.19라고 들어서 알고 있는 사건.


1960년은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의 부정 부패, 언론에 대한 탄압, 미군원조 축소에 따른 경제적 붕괴, 학생운동 탄압 등의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시기였단다.

그런데, 간크게도 자유당 정부는 3.15 부정선거를 저질렀고, 여기에 저항하여 전국에서 부정선거 무효를 주장하는 시위가 일어났단다. 그러던 중, 4월 11일 실종되었던 김주열 학생이 마산 앞바다에서 왼쪽 눈에 미제 최루탄이 박힌 시신으로 떠올랐고, 시위는 급격히 확대되었지.

그런데도 이승만은 시위를 ‘공산주의자들의 음모’라고 하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모른체 했고, 4월 18일 고려대 학생들이 정치깡패들의 습격을 받는 사건 이후, 19일 서울에만도 3만 이상의 시민과 학생들이 거리로 나섰고, 대통령 집무처 경무대로 수천 명이 전진하자 경찰이 발포하여 이날 자정까지 서울에서 약 130명이 죽고 1,000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지. 계엄령을 선포했지만 결국 이승만은 26일 하야하고 하와이로 도망치고 말았어.


부정을 저질러 자기만 잘 살겠다고 하는 독재자의 종말은 언제나 비극적이란다.

우리가 공부를 하는 이유도, 잘 살자는 것도 있지만, 올바로 살자는 의미도 있지 않을까?

그럼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일일까?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을 가고, 월급 많이 받으며 편안하게 사는 삶? 예쁜 아내를 맞아 아이들을 잘 기르고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하는 삶?


어른들이 너희에게 꿈이 없다고 야단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지 않니? 요즘 아이들은 영 ‘꿈’이 없어서 큰일이라고.

2,30년 전, 가난하던 시절엔 은행원, 회사원이 되어 <먹고 사는> 꿈이 있었단다.

그런데, 우리 나라가 이제 좀 부자가 됐잖아. 그래서 <먹고 사는> 건 꿈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되었지. 그럼, 너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해 봤니?


너희도 알겠지만, 너희가 대학을 나와도 취직하긴 어렵고, 비교적 안정적이라고 하는 공무원이 되기는 정말 어렵단다. 앞으론 공무원도 점점 줄어들테고, ‘비정규직’ 자리가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고 있단다.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은 한정되어 있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자리도 많은 수는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이 차지하게 되는 것이 미래의 한국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내가 너희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무조건 수능 공부를 열심히 하고, 내신 성적을 높이는 것이 행복한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없단 사실을 받아들이라는 거야. 물론 시험 준비도 잘 하고, 수행 평가도 열심히 내고, 수업에도 잘 참여해야겠지만, 너희 나름대로 ‘실력있는 사람’, ‘준비하는 사람’, 그리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려는 노력을 하라는 것이다.


이제 잔인한 4월이 오면, 신문에 ‘데모’ 소식이 자주 실릴 것이다. 인터넷 뉴스로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고. 지금 프랑스에서는 ‘노동 시장 유연화’(노동자를 쉽게 자르는) 법안 때문에 고등학생과 대학생이 길거리에 나서서 난리가 아니란다. 한국은 프랑스 같은 선진국에 비해서 상황이 훨씬 나쁘다고 할 수 있다.

사회가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를 바라보고, 관찰하면서, 미리 대비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하늘과 땅만큼 차이를 보일 수 있다.

너희가 할 일은, ‘바로 사는 길’에 대해 공부하는 일이다. 무슨 공부냐 하면, 신문이나 인터넷에서 연예인 뉴스나 읽지 말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좀 공부하란 말이다.

세상은 아주 빨리 변하는 것 같지만, 참 바뀌지 않는 측면도 있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빼앗기는 측면은 너무도 빠르게 변화하지만, 이미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많은 재산을 가진 자들 중심으로 모든 제도가 돌아가는 것은 참으로 바뀌지 않는다.


작년에 APEC이란 회의 이후로, 외국 쌀이 들어오게 되었고, 한국 영화 상영 의무도 줄이게 되었다. 앞으로 엄청난 파도가 밀어닥치면, 작은 일자리들은 그 파도에 쓸려서 어디로 사라질지 모를 일이다. 선생님이 게시판에 붙여주는 읽을거리들이나, 뉴스를 읽으면서 생각을 키우는 아이들이 되었으면 한다.


4월은 잔인하다는 둥, 하면서 심각한 이야기를 했지만, 이건 멀리 봐야 하는 이야기고...

날마다 교실에선 ‘항상 웃자.’


2006년 벚꽃 만발한 소명 동산에서


너희의 행복을 비는 담임 선생님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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