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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ㅣ 마음산책 짧은 소설
이기호 지음, 박선경 그림 / 마음산책 / 2016년 2월
평점 :
손바닥 장 掌 자를 써서 '장편 소설'이라고 부르는 영역이 있다.
'단편 소설'보다 훨씬 짧을 때 그렇게 부르는데, 뭐 그 길이의 차이는 정확한 집합이 되지는 않을 게다.
이기호의 소설집인데, 그야말로 완전 짧다.
처음엔 허망하더니, 읽다 보니 마음이 짠했다.
여느 사람들이라면,
이런 것 몇 개를 엮으면 하나의 단편이 될 수도 있는 노릇일 터인데,
아이들에게 소설을 가르치면서 습작으로 썼던 것인지,
삶의 결정적 단면을 촌철살인으로 그리고 있다.
단편 소설을 읽는 일조차 버거운 현대인들에게라면,
이런 꽁트도 좋은 읽을 거리가 되지 싶다.
자살하려는 남자에게 라이터를 빌린 트럭 기사...
저기, 그러지 마시고요, 선생님.
여기 벤치에 앉아서 저하고 같이 고등어나 한 마리 구워 드시죠.
어차피 라이터도 저 주셔서 번개탄 붙이기도 어려울 텐데...
뭐, 그냥 허기나 채우자고요. 별도 좋은데.(71)
인생은 비극인데,
또 살만 한 면이 있다.
A small, good thing.
별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이런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이 있다.
아이가 죽는데, 그 죽음의 황망함을 겪은 부모에게
장난전화가 걸려와 그 악의를 혼내러 갔다가
빵집 남자의 '작지만 도움이 되는 빵의 힘'을 얻는다.
단편 소설이란,
삶의 비극성을 한 단면의 사건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장편 소설은 그 삶의 비의를 인물의 오랜 행동과 인물간의 갈등을 통해 보여준다면...
그래서 이 소설집의 작품들은 번개가 번쩍 내리꽃힐 시간 만큼의 순간에
인생의 페이소스를 집어낸다.
당 아파트에 출입하는 배달 사원들로 인해
주민들의 이용 불편과 승강기 유지 관리비가 발생하므로...
반드시 계단을 이용해...(139)
아, 이런 싸가지 없는 아파트가 있을까?
싶은데, 아마 있을 것이다.
전에 부산의 어느 아파트에서 경비 할아버지더러
중학생에게까지 인사를 시킨 갑질을 한 인종들이 있었으니.
그렇지만, 거기서 닭을 받아가는 남자의 한 마디는 또 인생을 감싸준다.
앞으로 저희집 배달은 여기 엘리베이터 앞으로 오시면 됩니다.(142)
이게 인간 사는 세상이다.
인간 세상에는 별 인종이 다 있게 마련이다.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하며 사는가가 숙제인 셈이다.
재미있는 이기호의 소설을 원한다면,
좀 크리스피 하지만 ㅋ
그래서 바삭거리며 먹고 나면 뭐, 먹은 감도 별로 남지 않지만,
인생의 맛을 느끼고 싶을 때, 몇 개씩 입에 넣고 바삭, 하고 읽어도 좋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