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화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3
김이설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을 읽으면서, 그냥 선화에게 미안했다.

 

나면서부터 얼굴의 반쪽에 드리운 흉터의 흔적으로 힘들어 하는데,

어머니의 자살, 악의적인 언니와의 불화 등으로 삶은 재미라곤 없는 것이다.

어머니가 하던 꽃집을 이어받아 하는데,

바깥에서 보면 이쁜 꽃들로 만발한 꽃집 아가씨는 몸을 움직여야 하는 거센 일이다.

 

선화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선화의 삶은 잘못 끼워진 단추마냥 아팠다.

키가 150도 안 되는 남자친구도 서러웠고,

최가희라는 여자와 영흠이라는 남자처럼 제정신 아닌 사람들과 엮이는 것도 서러웠다.

거기다가 아버지의 죽음까지...

 

그의 <환영>에서 오리고깃집 일하던 평범한 사람이 수직으로 추락하는 삶을 그린 반면,

<선화>는 꽃집 아가씨여서, 그나마 수직으로 추락하진 않아서 내심 다행이었다.

 

엄마는 왜 꽃을 좋아해?

꽃은 아무 말을 안 하니까.

나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46)

 

아, 세상의 '아무 말'이나 내뱉은 것들은 저주받으라.

어버이 연합이 그렇고, 엄마 부대가 그렇고,

갑질하는 모든 것들이 그렇고,

가족이란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들이 그렇다.

아무 말을 안 하는 꽃보다 못한 것들... 많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네요.(72)

 

생활의 달인 코너에 등장한 사람들이 다 그렇다.

어쩌다 이 일을 하게 되었나요?

아, 그 시대에는 그냥 먹고 사는 일이 곁에 있으면 하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들...

 

두렵지 않다는 생각이 중요했다.

두렵지 않다면, 그들은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다.(77)

 

두려울 것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두려워하면 더 두려운 존재가 된다.

 

병준은 운명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나는 학습된 기억이라고 생각했다.

상처를 가진 것들은 상처를 겪은 것들을 한눈에 알아챌 수 있었다.

그들에게 배인 특유의 냄새가 보였기 때문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배인 상처가 곪고, 물러터진 후에 딱지로 내려앉아,

거친 흉터로 남기까지의 세월이 만든 냄새였던 탓이었다.

그것을 알아내는 감각은 직관적으로 발생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경험으로 훈련되어 발달된 감각이었다.(91)

 

선화가 잘 살면 좋겠다.

학습된 것이든,

운명이든,

세월이 남긴 냄새를 안고 한 세월을 잘 건너가기를...

빌어줄 수밖에 나는 힘이 없었다.

 

이번에 나온 그의 소설집,

<오늘처럼 고요히>의 해설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빈집'을 포함해 총 9편의 소설이 수록된 이번 소설집을 통해,

김이설은 그 벗어날 길 없는 세계에서 삶은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가,

아니 그런 삶도 과연 지켜나갈 만한 것인가,

 라는 둔중하고도 무서운 질문을 던진다.

그리하여 '오늘처럼 고요히'라는 제목은

수록된 소설들의 전체 이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면서

동시에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오지 않으리라는 걸 체득한 인물들이 내뱉을 수 있는 최소한의 바람이 된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오지 않는다면...

그런 인물들을 만나서 다시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는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