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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플레
애슬리 페커 지음, 박산호 옮김 / 박하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미국과 프랑스, 터키의 전혀 다른 지역에서,
세 사람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들의 특징은, 참으로 곤란한 삶의 지경을 당했다는 것.
남편 아니가 뇌경색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어 하숙집 아줌마가 된 릴리아,
아내 클라라의 돌연사로 졸지에 홀애비가 된 마크,
푸념과 저주, 과장으로 떠벌이는 치매노인을 떠맡게 된 페르다.
나이들어 겪게 되는 장애, 죽음, 치매 등의 장벽 앞에서
사람들은 얼마나 갈팡질팡 하는지...
그러나, 또 삶을 이어진다.
수플레는 프랑스 디저트 음식으로
부풀어 오르는 모양을 음식 이름으로 삼은 것인데,
오븐에서 굽기가 상당히 힘든 모양이다.
꺼낼 때 푹 가라앉기 십상인 수플레...
거기서 작가는 인생의 묘미를 찾은 듯 하다.
수플레의 한 가운데가 푹 꺼질때마다
매번 가슴이 텅 비는 것 같은 공허함을 느끼겠지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가슴이 텅 비는 것 같은 공허함을 느끼면서도 계속 살고 있는 것처럼.(203)
어떤 부분에서는 아주 직접적으로 삶을 수플레와 맞댄다.
수플레는 변덕스러운 미인과 같다.
아무도 그녀의 기분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 없다.
모든 요리사는 수플레를 수없이 만들어 보면서
자신만의 최선의 조리법을 찾아낸다.
그릇과 오븐을 수십 번도 넘게 써서 시도해본 후에야
최고의 수플레를 만들어 낸다.
그릇과 오븐이 닳도록 만들어 보고 마침내 아주 긴 전쟁 끝에 생긴 자제력을 얻고서야
그런 수플레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155)
삶은 정해진 답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나름대로의 해답을 찾아내는 것이다.
삶마다 다른 레시피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랄까.
누구나 절벽 앞에서 좌절한다.
그동안 억지로 해왔던 모든 것이
사실 얼마나 의미 없었는지 알게 됐다.(69)
그리고 삶은 자신을 위한 것만도 아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오늘도 불철주야 힘겹게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다.
그녀에게 음식이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의 삶에 맞춰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의 한심한 인생은
같이 있는 사람들이 계속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게 다였다.(285)
그러나, 삶의 묘미는 허무하기만해 보이는 속에서
간혹 겪게 되는 부풀어오름의 순간들의 매력에 있다.
나이가 들수록 짜릿한 로맨스보다는 훈훈한 우정의 순간에 익숙해진다.
삶에 익숙해지는 것이란 그렇게 자제력을 통해 얻는 체득에 있는 듯 하다.
잊지마라. 모든 재료에는
대용품이라는게 있단다.
가장 중요한 점은 당황하지 않는 거야.(287)
낯선 상황에서,
죽음과 환자를 마주하고 살아야 하는 막막한 삶일 때,
그때야말로 자기 삶을 부풀려줄 수플레의 레시피가 필요한 때일 것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당황하지 않고 사는 것이란 말이 위안이 된다.
대용품이 있다는 말도 크게 도움이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요리 속에서 찾게 되는 나름의 길을 음미하게 된다.
재미있다.
힘겨운 사람에게 선물해 주어도 좋을 책이다.
바로 써야할 단어 하나.
홀몸...은 혼자사는 사람을 뜻한다.
페르다의 딸이 새 남친을 만나 임신을 하는데... 자꾸 '홀몸도 아닌데'라는 말이 나온다. 아기를 가지지 않은 몸은 '홑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