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기호의 소설집.

'갈팡질팡하다가~' 소설집의 제목이 되기도 한 소설에서는,

운도 없게 길거리에서 줘 터지는 아이가 나온다.

경찰서로 가면 늘 진술서를 쓰게 마련.

맞는 사람은 '왜'가 없다.

 

그건 원래 처음부터 이유란 게 없었던 일이었거든.

근데 어떡하든 서류를 작성해야 해.

그러니 어떡해?

그때부터 이유란 게 생길 수밖에...

뭐, 사는 것도 다 똑같지만..;(282)

 

그래. 삶은 원래 그런 거다.

이기호가 삶을 대하는 시선이 그렇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운운하는 김형철의 해설은 웃기는 나발인 거다.

요즘 뉴스에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과연 '정치적으로 올바른'이 세상에 있는가를 묻게 된다.

없다. 그 따위는 없다.

이유란 게 없었던 거다.

그냥 조정해서 짤라버리고 싶은 거다.

 

우연을 대하는 각자의 자세...가 있다.

우연이란, 지배해야 마땅한 어떤 영토 같은 것으로 배워왔다.

그러나 나는 그 논리가 버거워~(268)

 

자신의 작법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래서 그는 '나쁜 소설'을 쓴다.

메타 소설이라고나 할까.

'할머니~'도 마찬가지다.

그것들은 소설에 대한 소설이고,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다.

결국, 이야기를 대하는 각자의 자세가 있을 뿐이지,

지배적인, 그리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논리따위는 애초에 없는 것이다.

작가의 그런 의도가 마음에 쏙 든다.

 

그래서 소설 속 인물들은 자신만의 세계에도 부끄럽지 않다.

 

나는 걸어가면서

정확히 열한 걸음 간격으로 서있을 뿐인 플라타너스 나무들에게

일일이 하이파이브를 해주었다.(124)

 

여기 네 친구 방바닥하고 인사 나누렴,

저런 방바닥이 어깨가 없네.

그럼 네가 방바닥에게 어깨동무를 해주고,

자, 치이즈~(104)

 

남자는 자신이 껴안고 있던 국기게양대 굴곡에

눈을 감고 입을 맞추었다.

조심스럽게.

고개까지 사십오 도로 기울이고.(174)

 

나무와, 방바닥과 국기게양대와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

뭣이 이렇게 말도 안 되냐고 할 수 없다.

시봉과 진만이처럼 덜떨어진 인간이 어디 있냐고 물을 수도 없다.

그럼,

가난한 사람들의 나라 발전를 위해서

가난한 사람들을 짤라야 하겠다는 건 말이 되냐고 되묻고 싶어 지니까.

 

그런 인간들보다는

플라타너스가

방바닥이

국기게양대 굴곡이 더 섹시하고 아름다우니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