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하는 작별 - 가족, 일상, 인생, 그리고 떠나보냄
룽잉타이 지음, 도희진 옮김 / 양철북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룽잉타이의 첫 책이 아들과 나눈 편지글들이었고, 이번 책은 삶의 주변을 돌아보는 수필들이다.

가장 많은 내용은 나이들어가고,

머릿속에 지우개가 늘어 딸도 못알아보게 되는 부모님들과의 이야기들인데,

애써 가볍게 즐겁게 적고 있지만, 쓸쓸하고 안쓰런 맘이 곳곳에 가득 스며 있다.

 

'눈으로 하는 작별'을 '目送'이라 적었는데,

 부모자식 간이란 원래 서로 멀어지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 바라보고 섰는 일이란 뜻이 담겼다.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해해가고 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부머와 자식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점차 멀어지는 서로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별하는 사이가 아닐까.

우리는 골목길 이쪽 끝에 서서

골목길 저쪽 끝으로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본다.

그 뒷모습이 당신에게 속삭인다.

이제 따라올 필요 없다고.(19)

 

안드레아에게 대충 음식을 해주니, 아들이 제대로 만들어 준다.

이제 잘 배웠으니 다음에 만들어 준다 하니 아들이 하는 말이 멋지다.

 

저에게 만들어 달라는 게 아니에요.

모르시겠어요?

나중에 혼자서도 이렇게 만들어 드시라고 가르쳐드린 거예요.(90)

 

치매가 걸린 엄마의 '집'에 대한 생각들...

 

엄마의 집은 공간이 아닌 시간 속에 있다.

그 시간 속에서는 어린아이가 숨바꼭질하며 웃고,

부엌에서는 생선 굽는 냄새가 진동하고,

남편이 등뒤에서 두 눈을 가리며 누군지 맞혀보라고 농을 건다.

엄마는 타임머신을 타고 이곳에 왔다가 돌아가는 차를 놓친 시간 여행자다.(99)

 

친구따라 라틴 댄스장에 간 작가.

 

댄스홀이 나에게는 '끝없이 지는 나뭇잎은 쓸쓸히 떨어지고'라는 두보의 시구를 연상시켰다고...(169)

 

좀 멋대가리 없는 삶이기도 하지 않은가?

타이완과 중국 사이에 '진먼 섬'이란 곳이 있단다.

그곳의 삶은 참 고통스러웠을 듯...

 

진먼 사람들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이 섬의 아이들은 공놀이를 하지 못하고 자랐다.

행여 농구공 몇 개를 묶어 바다에 띄우고 공산당 편으로 넘어가기라도 할까봐.

공은 금지 품목이었다.

어두워지면 폭격의 목표가 될까 두려워 집집마다 두꺼운 담요로 창문을 가리고 목소리를 낮추었다.(183)

 

타이완 사람들의 삶도 참 신산한 것이었겠구나 싶다.

 

체제와 상관없이 지도자가 사람들을 움직이기란 너무나 쉽다.

밖에서 적들이 위협한다고 말하고 나서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비애국자로 몰거나 조국을 위기에 빠뜨린다고 뒤집어씌우면 그만이다.(228)

 

아, 왜 이 정부가 밀어붙인 통진당 사태가 떠오르는 것일까.

그 애비에 그 딸이 한 짓은 모두 나치의 전범 '괴링'의 선동에서 배운 것인가?

 

어느 시간 어느 장소든 몸을 편히 두고 할 일을 하다 보면

결국은 바로 그것이 좋은 시절이고 멋진 낙원인 것이다.

이러든 저러든 시간은 흘러가게 마련이다.(261)

 

무엇인가 안 되어 가슴 졸이는 사람들에게 안심을 주는 반야심경을 그도 읊조린다.

조급해할 일 없다고 다독거리는 글, 반야심경.

그래, 시간은 흘러간다.

속 끓이지 말자.

 

오십 줄에 들어서 자식들이 장성해서 품을 떠나려 하고,

부모들도 연로하여 뒤돌아 보며 이별의 골목길을 나서려 하는 나이의 사람들이 읽어볼 만한

아련한 수필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