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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이나 음악은 너한테나 좋은 거다.
난 살아가는 데 그런 거 필요 없다.(92)
작은 구멍가게를 운영하며 살아온 아버지.
어른이 되어 바라본 아버지는 점점 왜소해 지고,
그러다 앓아 눕고 죽어 간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우리가 더 이상 서로에게 아무 할 말이 없게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93)
아니 에르노가 청년을 소개하자
아버지는 자신의 정원, 혼자 힘으로 지은 차고 등을 보여준다.
이 청년이 자신의 가치도 인정해 주리라는 희망을 품고,
그저 예의 바르기만 바랐지만,
가장 얻기 힘든 것이었다.(106)
그에게 아버지란 무심한 사람이었고,
어머니와 나눌 수 있던 정신적 공유라고는 전혀 없는,
그저 생활을 위해 사는 남자일 뿐이었나보다.
아마 그의 '한 여자'는 훨씬 공감과 정감의 유대가 풍부하게 표현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름의 정리가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굳이 이런 이야기를 책으로 펼 필요가 있을까?
그를 멸시한 세계에 내가 속하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자부심이요 삶의 이유 자체였는지도 모른다.(127)
아~ 씁쓸하다.
'아빠는 왜 있지?'하는 초딩의 시처럼,
외롭다.
마지막에 그가 몇 년 전 가르친 제자를 마트에서 만나
무의미한 몇 마디를 나누고,
제자에게 '또 봐요'라고 인사를 했지만,
제자는 뒷손님의 물건을 계산하고 있더라는 에피소드를 적는다.
그에게 잊혀진 아버지는 그런 관계였다는 이야길까...
무의미한 교사-학생 관계였던 그들처럼,
한때 잠시 이어졌던 아버지-딸의 관계인 듯이...
감동까지 기대하지는 않았더라도,
무심으로 일관하는 이야기는... 솔직한 표현이라는 것을 장점으로 꼽아줘야 하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