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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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에 많은 책들이 꽂혀 있다.

아직 읽지 않았으나 오늘 당장 내다 버려도 아까움이 없을 책도 상당수이고,

읽었으나 기억도 없고 아마 죽기 전에 다시 펼칠 일이 없을 책도 상당하다.

그렇다면, 읽기 위해 간추려야 할 책과,

읽었더라도 두고두고 간직하고 싶은 책을 간추리면 얼마나 될까...

 

담론이 그런 책이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선생의 '나의 고전 독법 - 강의'는 멋진 책이지만,

이 책은 깊은 책이다.

 

강의가 간결하게 책을 이해하도록 인도하는 '개론서'라면,

이 책은 한 챕터가 모두 고전으로 안내하는 깊이를 가지고 있다.

 

공부하는 이유는

문사철의 추상력과

시서화의 상상력을 유연하게 구사하고

적절히 조화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입니다.(53)

 

아, 글쓰기에 이만한 조언도 드물다.

세부와 낱개에서 '구성'을 조망하는 힘과,

그것을 다시 '형상화'하는 힘을 가져야 읽고 말하고 쓰는 일이 되는 것이다.

 

고전을 공부하는 이유는

장기 지속의 구조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고전들을 읽으니, 이미 다 서술되어 있었습니다.

고전과 역사는 비켜갈 수 없습니다.(59)

 

주역을 읽기 위한 이야기들이다.

 

우리는 모두 꼬리를 적신 어린 여우들(200)

 

주역의 구절을 인용하여 이런 말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래서 고전을 읽어야 한다.

 

이라크 침공은 달러 헤게모니를 방어하기 위한 전쟁이란 것이

국제정치학자들의 의견입니다.

이란, 베네수엘라, 이라크 등은 이미 외한 보유를 유로로 하고 있습니다.

후세인 정권이 석유결제 화폐를 유로로 바꾸려 했습니다.(353)

 

세계는 허구다.

위선으로 가득하다.

 

민족 투쟁에서는 무력하고 비겁한 반면,

국내 계급투쟁에서는 탁월한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392)

 

마치 21세기 한국의 정치가들 같지만,

이것은 광해 시대의 이야기다.

조선 노론 300년의 역사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그것을 신동엽은 '종로 5가'에서 이렇게 썼다.

 

대륙의 섬나라의

그리고 또 오늘 저 새로운 은행국의

물결이 뒹굴고 있었다.

 

남은 것은 없었다.

나날이 허물어져가는 그나마 토방 한 칸

봄이면 쑥, 여름이면 나무뿌리, 가을이면 타작마당을 휩쓰는 빈 바람.

변한 것은 없었다.

이조 오백 년은 끝나지 않았다.

 

고전을 읽고 무엇을 할 것인가.

 

독립된 공간과 집단적 지성 그리고 소통구조를 사회화하는 일이 과제(394)

 

신영복 선생의 이야기는

다양한 이야기들로 초입을 잡지만,

결국 지적인 사회와 합리적 이성이 자리잡기를 바라는 희망으로 일관한다.

 

Here and now, How가 실사구시라면

Buttom and tomorrow, Why가 진리 대응의 방식입니다.

개념 자체의 의미를 재구성해야 합니다.(403)

 

그래, 국가가 잘 살아 져야 합니다.

이런 말은 좋아 보이지만,

그래서 히자브를 뒤집어 쓴 여인이 돈을 무척 벌어왔다고 떠벌리지만,

그 돈은 <왜> 벌어왔으며, <내일> 그 돈으로 누가 이득 볼 것인지를 이야기할 수 없다면,

다 사기라는 것이다.

 

선생이 떠나신 일이야

자연의 섭리겠으나,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큰 슬픔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그 그림자가 멀리 드리웠기 때문이었으리라.

새삼, 삼가 고인의 명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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