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부서질 것도 없는 존재감의 가벼움이

삶의 본질을 투영하는 작품이 있다면...

이 소설집을 읽으면 '무진 기행'이 떠오른다.

스토리보다는 이미지로 각인되는 소설이라서일까?

 

귀청을 찢는 듯한 해명도

그 한복판에서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미 소리가 아닙니다.

그저 익숙해진 평범한 소리같은 것으로

저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고 잠을 잘 수 있게 되었습니다.(77)

 

소소기 바다는 또 빛나기 시작합니다.

바람과 해님이 섞이며 감자기 저렇게 바다 한쪽이 빛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어쩌면 당신도 그날 밤

레일 저편에서 저것과 비슷한 빛을 봤는지도 모르겠습니다.(82)

 

사람은 혼이 빠져나가면 죽고싶어지는 법,

이라는 이야기와 환상적인 장면들은

현실과 오버랩되는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영화를 찾아보고 싶게 만드는 소설.

 

아야코는 언제까지고 밤 벚꽃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아아, 이거구나.

대체 뭐가 이것인지 분명히 알기는 어려웠지만

그녀는 지금이라면 어떤 여자로도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이 마지막인 꽃 안에서 일순 본 것인데,

그 아련한 기색은 밤 벚꽃에서 눈을 떼면

순식간에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리는...(110)

 

이 소설을 관통하는 사건은 죽음이다.

그러나, 그 죽음들은 명확한 사건이 아니라

희미한 배경이고,

전경에 가득한 빛은 환상처럼 빛나는 벚꽃잎들이다.

 

란도라는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문밖에서 희미한 술렁거림이 일었다.

여관의 안뜰에 있는 잎을 떨어뜨리는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는데

교토의 약간 후미진 곳에서는 그와 비슷한

이유를 알 수 없는 술렁거림이 귓전을 때린다.

그것은 바람이거나 흔들리는 잎이거나

누군가 낙엽을 밟는 소리이거나.

아무도 자지 않는데도 방의 어딘가에서 잠자는 숨소리 비슷한 게 들려오는...(135)

 

명확하지 않은 문장들이 그려내는 장면이

오히려 더 명확하게 각인될 때가 있다.

무진의 명물, 안개처럼...

이 소설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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