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경보기 - 절실하게, 진지하게, 통쾌하게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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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가 책갈피가 필요해서 아무 종이나 접어서 쓰고 있었는데,

다 읽고 책갈피를 버리려다 펴 보니 학생의 조퇴증이다.

자습을 하지 않고 조퇴하는 사유는 '과도한 짐'이었다.

 

그 아이야 시험을 앞두고 가져가야 할 짐이 많으니 부모님이 데리러 와서 일찍 간다는 이야기였겠으나,

한국 사회와 '과도한 짐'이 불러오는 연상은

마침 이 책의 주제와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편집자는 강신주를 '비상 경보기'로 띄우고 싶었나 모르겠으나,

철학자는 결코 '경보기'가 될 수 없지 않을까?

하긴 이 시대에 강신주처럼 알람 소리를 빵빵 울리며 뛰어다니는 철학자도 없으니,

여느 정치가나 평론가보다 더 활발한 활동을 하니 경보기가 될 만도 하다.

 

철학이 하나의 삶의 형식이라는 사실은

고대철학의 세계에 관통하고 스며들어 있으며 지속되고 있는 파르헤지아라는 기능,

즉 용감하게 진실을 말하는 기능이란 일반 도식으로 해석되어야만 한다.

철학적 삶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물론 어떤 것들의 포기를 초래할 수밖에 없는 특별한 인생의 선택이다.(441)

 

사회가 망가질수록

파르헤지아의 기능이 필요하고,

특별한 인생이 되기 쉬운 법이다.

 

정권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위축시켜 수세적으로 만들려는 것.

한 마디로 쫄도록 만드는 것이

색깔론을 불러오는 사람들의 의도다.(432)

 

사회는 이미 자본의 힘에 휘둘려 사람들은 미래를 향한 막연한 꿈에 젖는다.

 

'고도를 기다리며'처럼 그들의 기대는 항상 유보될 뿐.

지금 해야할 일만 완수하면 타인과 함께 시간을 보낼 거라고 기대하지만,

컨베이어 벨트처럼 하나의 일이 마무리되면,

어느 사이엔가 새로운 일이 그들 앞에 놓여 있을 터이니...(237)

 

파르헤지아에 나설 용기와 시간을 내지 못하도록,

또는 용기를 짓누르기 위해 국가는 '절차'의 그물망을 친다.

 

절차에 포획되는 순간,

민주주의는 숨쉴수도 없다.

절차란 민주주의를 지치게 하기 위한 교묘한 역설.(346)

 

조선 독립을 위해서는 위조지폐를 만드는 일을 꺼리지 않았던

신채호를 떠올리라.

목적이 정당하면 수간과 방법마저 우리가 정해야 하는 것이다.

체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든지 간에.(425)

 

 

부정선거에 대한 의혹도 재판부는 눈감고 있지만,

부정선거에 나선 국정원 직원에 대해서도 모두 무혐의처분하고 있지만,

야당이 조금 이긴 선거에서는 대대적으로 재판을 개시한다는 것이 국가다.

절차는 정부의 입맛에 맞는 처리를 위한 것일 뿐.

 

굴욕이 앞에 있을 때, 니체를 떠올리라고 한다.

 

순간적 굴욕은 참으라고?

니체의 영원회귀를 떠올리라.

잠시란 바로 영원이다.

그건 영원한 굴욕이다.

부당한 권력 앞에 당당히 맞서라.(381)

 

이 글들은 추위 앞에서

옹송그리며 떨며 쓴 글들이다.

그러나, 그 추위를 이길 온기는 누구도 주지 않는다.

아니, 우리가 어깨를 겯을 때 온기는 생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살이 아리게 춥다.

그럴수록 우리는 더 붙어 있어야 한다.

온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봄은 우리에게 조용히 찾아올 테니.

아니, 어쩌면 우리가 나눈 온기 자체가 바로 봄인지도 모른다.(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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