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 작가 - 43인의 나를 만나다
장정일 지음 / 한빛비즈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장정일은 어떤 사람일까?

세상은 진보와 보수, 혁명과 수구로 나뉘지 않는다.

인간은 어느 한 지점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부유하는 운동체이다.

 

세계 제일의 분단 국가,

제일의 안좋은 것을 수두룩하게 타이틀을 차지한 남한에서,

책을 읽는다는 일은 그래서 어느 한쪽의 의견을 듣는 데 그치는 일이기 쉽다.

 

이 책에는 학자부터 방송가, 저널리스트, 칼럼니스트, 기업가 등

종잡을 수 없는 분야의    작가들을 인터뷰한 기록들이 간결하게 실려 있다.

 

경제적으로 호황일 때 윤리적 자기 계발을 찾고,

경제적 불황일 때 신비적 자기 계발을 찾습니다.(19)

 

첫 인터뷰가 자기계발의 '사기극'과 관련된 것이라니 의미가 깊다.

젊은이들에게 '사기의 계발' 구라를 퍼뜨리는 자들이 그득하니 말이다.

 

사회적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는 상황에서 자기계발을 맹신해서는 안 된다.(21)

 

제가 가장 사랑하는 인물들은 우물쭈물하는 사람들이고,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들이 용기를 내서 한 발짝 내딛는 이야기(55)

 

이런 희곡 작가라니, 따스할 듯 싶다.

이 책을 읽다보면, 마구 읽고 싶은 책이 늘게 된다.

그나마 내가 내공이 늘었다면, 바로 구입하지는 않는다는 것.

 

현실은 늘 폭력적이게 둔 채 예술의 세계에서만 부드러움을 찾기보다는

현실에서의 폭력이 줄어들고 예술에서의 폭력이 증가하는 것이 훨씬 괜찮은 세상.(77)

 

최규석의 만화가 지향하는 바이다.

송곳,의 힘이 느껴진다.

 

제 문체와 조언 속에서 느꼈다는 힘은

자존감에서 나온 겁니다.

그게 없으면 뭘 해도 행복하지 않습니다.(101)

 

김어준이다. 자존감의 인간.

세상이 자존감을 바닥치게 만든다.

그래서 김어준이 힘이 세다.

 

과학자가 연구비를 따려면 미국에서는 세계 최초라 해야 돈을 주고,

일본은 미국을 이길 수 있다고 하면 됩니다.

한국은,

무조건 돈이 된다고 하면 되죠.(155)

 

한국 과학은 아프리카 태권도 수준이라는 과학자...

슬프지만, 그것이 자화상이다.

 

우리나라처럼 경직되고 위선적이며 공격적인 사회는

상대와 섞이고 싶은 진실한 욕구가 좌절된 데서 온 거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오르가슴 능력을 갖춘 사람은 억압적인 권위에 대해 체질적인 알레르기 증상을 보이게 되고

본능적으로 저항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지배자들은 이데올로기, 문화, 교양 같은 신비화 전략을 통해

피지배자들이 오르가슴으로부터 무감각해질 수 있는 구조적 장치들을 사회 도처에 실시합니다.(185)

 

어떤 말인지는 알겠으나~

난 이처럼 성적인 용어를 학문에 접합하는 데 저항감이 든다.

융도 그랬을래나.

 

문제는 강력한 왕권이야, 이 바보들아. 라고 일갈하는 필자가 요즘엔 너무 많다.

거기서 불거지는 것은 대한민국 현대사에 대한 자신의 환유적 욕망이다.(198)

 

요즘 '태양의 후예'에 대한 폭풍적 열망 뒤에 숨은

국기 하강식 같은 모습은 박정희 시대의 '속성'을 부르는 '환유'가 아닐까?

명량의 '이순신'에서 자신의 쿠데타라는 피냄새를 지우고,

애국의 덧칠을 하려고 무척 애쓴 아버지를 둔 여자가 애써 부르는 '환유'

 

보수주의자 맹자에게 지켜야 할 중요한 것은 인간의 존엄성이었고,

그 존엄성의 근거는 한 줌 마음입니다.(221)

 

이런 보수주의라면 대환영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뒤로한 '용산'과 '세월호'에 국민들이 눈물흘린 것은,

노무현의 죽음 앞에서 그토록 한스럽게 조문을 했던 것은,

존엄성에 대한 부정 앞에서 꺾일 수 없다는 자존심의 마음이었을 게다.

 

프랑스는 우리의 '청산'을 역사 용어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 말에 해당하는 프랑스어는 '숙청'입니다.

청산의 우리말 뜻이,

과거의 부정적 요소를 깨끗이 씻어버림이라면,

숙청은

엄하게 다스려 잘못된 것을 모두 치워 없앰, 이니...(227)

 

그래 친일파도, 독재의 과거도 '청산'할 노릇이 아니다.

피비린내 번지더라도 '숙청'을 했어야,

지금의 현실로 후퇴하지 않았을 것인데,

아직도 야당은 그나마의 민주화 시대의 향수를 팔고 있으니... 개탄스럽다.

 

한반도 내의 고대국가 설립 시기를 2-4세기로 잡은 것은

일제강점기 사학자들이 왜곡해 놓은 연구를 되풀이한 것이다.

식민 사학적 주장의 반증이 10여 미터의 성벽이 4킬로미터에 달했던 풍납토성.

이 귀중한 증거를

바람에 모래가 날려 쌓인 것이라는 주장까지 하며 인정하지 않던 한국 사학계.

그래서 발굴을 하면서도 사적지 지정을 하지 않아,

아파트가 들어서 4분의 3 가량이 파괴된...(311)

 

숙청하지 못한 역사는, 비극에서 희극으로 다시 반복된다 했던가.

읽고 싶은 책은 많으나,

그나마 장정일의 의견들을 들으면서 겸허해지는 정도로 만족해야겠다.

 

다음 주, 선거다.

부산은 워낙 일색의 지역이라 내 한 표가 무슨 힘이 있으랴마는,

투표장에 나가야 할 노릇이다.

책읽는 일에도 힘을 내야 하는 좌절스런 시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