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비평 171호 - 2016.봄 - 창간 50주년 기념호
창작과비평 편집부 엮음 / 창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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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 패악을 저지르는 걸 보고도 어찌하지 못할 때

몰상식과 물대포와 뻔뻔함과

국산 매카시즘을 이기지 못하고 있을 때

나는 다시 청년이 된다
누구든 그러지 않으랴

가슴이 뛰고 펄펄 끓는 동안은

모두들 다시 청년이리라

칭다오 제7중학교 이층 외벽에 걸려 있는 교훈처럼

구진 상선 치미 하는 동안은

우리도 청춘이다(192, 도종환, 청년, 부분)

 

기뻐서가 아니라

좌절스러워서 다시 화가 끓는 청춘, 슬픈 청춘.

진선미...

진리를 구하기 위해 선을 숭상함으로써 미에 이르는...

구진상선치미라...

 

이런 시대에 사는 것 자체가 죄인데

나라 없던 시절의 친일행적이나

독립투쟁이 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공이 있으면 과도 있게 마련이라고...

이 땅의 친일 친독재 세력에게

그러나 그게 무슨 문제란 말인가

개똥이 개똥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절망이 절망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정희성, 그러나 그게 무슨 문제란 말인가 중)

 

무슨 이런 나라가 다 있느냐며

이런 나라 사람 아닌 것처럼 겨울 팽목항에 갔더니

 

울음은 모래처럼 목이 쉬어 갈앉고

울기 좋은 자리만 남아서

 

바다는 시퍼렇고 시퍼렇게 언 바다에서

갈매기들이 애들처럼 울고 있었네

 

울다 지친 슬픔은 그만 돌아가자고

집에 가 밥먹자고 제 이름을 부르다가

 

죽음도 죽음에 대하여 영문을 모르는데

바다가 뭘 알겠느냐며 치맛자락에 코를 풀고

 

다시는 오지 말자고 어디 울 데가 없어

이 추운 팽목까지 왔겠느냐며

 

찢어진 만장들은 실밥만 남아서 서로 몸을 묶고는

파도에 뼈를 씻고 있네

 

그래도 남은 슬픔은 나라도 의자도 없이

종일 서서 바다만 바라보네(이상국, 슬픔을 찾아서)

 

굳이 슬픔을 찾아 나설 필요도 없이

매일이 슬픔이다.

 

1966년 내가 태어나던 해 겨울 창비 창간호가 부록으로

다시 추억팔이를 하며 붙어있다.

 

창간호에 이호철의 '고여있는 바닥 -어느 이발소에서'를 보면,

마치 고골의 '외투'나 '검찰관'을 보는 느낌이다.

거만하고 고압적인 인물 군상들과

그 주변의 힘없는 나약한 서민들의 대비가 시니컬하다.

 

오십년이 넘었으나,

아픔은 심화되고 더 커졌다.

 

싸르트르의 글 '현대의 상황과 지성'의 마지막 구절은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있다.

 

참여문학은 결코 '참여' 때문에 문학 그 자체를 망각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우리의 목적은 집단을 위하여 적합한 문학을 마련함으로써

집단에 봉사함과 아울러 문학을 위하여 새로운 피를 넣어줌으로써 문학에 봉사하는데 있다는 것을.(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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