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도 눈도 내리지 않는 시나가와역
김윤식 지음 / 솔출판사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김윤식 선생은 한국 문예 비평의 금자탑이다. 그 피라미드는 너무도 높아서 감히 넘볼 자 드물 것이다.

그분이 일본에서 공부하던 때를 돌이켜 본다.

일본에서 느꼈던 느낌을 퇴직하고 난 노교수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본다.

우리에게 일본은 무엇이었던가.
한국의 근대에 일본은 어떤 존재였던가.
김윤식 자신에게 일본은 어떤 존재였던가.

한국근대문예비평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솔직히 일본근대문예비평사를 답습했음을 털어놓지 않을 수 없다. 한국 근대 문예는 일본 근대 문예의 그림자일 수밖에 없었음이 그 이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씨의 문체가 너무나도 눈에 밟혔다.
대학 시절 수정이란 친구가 있었다. 교생실습 나갔을 때, 내가 칠판에 공람 사항을 몇 가지 메모했는데, ~~할 것. 이렇게 명사로 마쳤더니 수정이가 야단을 쳤다. 자기는 그런 문체가 너무도 싫단다. 그래서 바꿨나 어쨌나 모르겠다. 이쁘장해서 우리 과 남자 애들이 다 좋아했던 수정이. 이제 좀 늙었으면 그런 문체라도 봐 주려나 모르겠다.

~~했던 까닭. ~~ 했던 것. 이런 어정쩡한 명사로 마무리된 문장은 글을 마음에 담는 일을 끝없이 방해했다.

김윤식의 일본행에서 내가 읽은 것은 일제 식민 시대의 <일본인의 시선>이었다.
일본이 그토록 쉽사리 짓밟아 버린 머저리같은 나라 조선.
그 조선 땅을 밟은 일본인들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바로 조선의 <문화> 때문이었다.
석굴암을 보고, 조선의 밥그릇들을 볼 때, 무덤 곁을 지키고 섰는 무심한 석상을 볼 때, 문화의 차이는 <수탈>과 <골동>으로 내달리게 그들을 채찍질했으리라.

'비평으로 잘 씌어진 것은 모두 타인에의 찬사'라는 고바야시의 의견은 그럴 듯 하다.

일본민예관의 창설자이자 ‘조선과 그 예술’의 저자 야나기 무네요시의 이야기는 조선을 다시 보게 한다.

이상, 정지용, 윤동주와 임화... 그들에게 현해탄은 도대체 어떤 의미였을까?
일제 식민 본국을 밟은 그들은 현해탄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내가 선생이라 그런가, 이 책에서 일제시대 전체 조회의 순서를 놓치지 않았다.

1. 집합 2. 정렬 3. 인사. 4. 국기게양 5. 궁성요배 6. 라디오 체조 7. 교장훈화 8. 전달사항 9. 퇴장

이거, 날마다 하는 우리네 운동장 조회랑 너무 같은 거 아냐?  빌어먹을...

김윤식이 어렸을 적, 학교를 오가며 불렀단 일본 노래도 보였다.

아까이 도리 고토리 나제나제 아까이 아까이 미오 다베타(붉은 새 작은 새 어째서 붉은가 붉은 열매를 먹었으니까)

이런, 빌어먹을... 내가 초딩 시절, 빨간 새 빨간 새 어째서 빨간가 빨간콩 먹으니 빨갛지. 하는 노래 배운 기억이 나는데, 그게 일본 노래였다니...

'우리가 갈 수 있고 가야할 길의 지도를 하늘의 별빛이 비추어주던 시대는 복되도다!'라던 루카치의 소설론을 읽던 대학 시절. 그 시절이 어쩌면 행복했던지도 모른다. 별빛이 있었는지도 몰랐으니.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에서 보여준 두려움, 세상의 냉혹함을 이 책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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