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 이산동양고전 1
미야자키 이치사다 해석, 박영철 옮김 / 이산 / 2001년 10월
평점 :
품절


'논어'를 읽는 일은 어렵다.

'팡세'나 '수상록'을 읽는 일처럼,

토막난 생각들이 열거되어 있으며

그야말로 공자께서 '말씀하신' 것과 '행하신' 것의 사례를 늘어놓고 있어서이다.

 

그리고 핵심적인 어휘들, 예를 들면 '덕'이나 '충', '군자'나 '도' 같은 개념들도

알아듣기 힘들게 모호한 설명으로 뒤섞이기 쉬워서다.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논어는 조금 더 구체적이어서 좋다.

 

'이인'의 80. 불환무위 환무위립, 불환막기지 환무가지야.

 

지위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세울 것이 없음을 걱정하며

자기를 알지 못함을 걱정하지 말고 가히 알 것이 없음을 걱정할지니라.

 

이렇게 맥락을 읽은 후에 문맥을 설명해 준다.

 

지위가 없다고 걱정하지 마라. 지위에 이르는 능력이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문제다.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마라. 남이 알아줄 가치가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큰 문제다.

 

여느 논어와 나란히 펴고 보면, 이치사다 논어가 더 섬세한 개념 풀이가 되어 있어 좋았다.

 

'문질빈빈'처럼 해석이 쉽지 않은 곳도 재미있게 풀이되어있다.

 

질승문즉야, 문승질즉사, 문질빈빈 연후군자.(옹야 136)

 

질이 문을 승하면 야이고 문이 질을 승하면 사이나니 문과질이 빈빈한 후에 군자라.

 

실질이 있어도 문식을 결하면 그것은 야인이다.

문식만 알고 실질이 없으면 대필업자에 불과하다.

문식과 실질을 다 갖추어 빈빈히 볼 만해야 비로소 교양있는 군자라 할 수 있다.

 

'대필업자'나 '교양있는 군자'라는 말이 나는 참 좋다.

깊이 생각한 사람의 풀이가 좋은 지점이 이런 곳이다.

 

자이사교, 문행충신.(술이 171)

 

선생께서는 네 가지를 가르치셨다.

표현력, 실천력, 개인에 대한 덕의와 사회상의 규칙이다.

 

문장과 실행과 충성과 믿음... 이렇게 설명하면 심심하다.

자기의 풀이를 쓰는데 억지가 없기 쉽지 않다.

틈나면 논어를 여러 책 벌여 놓고 읽고 싶으나... 그런 여유로운 팔자는 못되니...

 

헌문치, 자왈, 방유도곡, 방무도곡, 치야.(헌문 333)

 

헌이 수치를 묻자온대 자왈,

방에 도가 있으면 곡하거니와 방에 도가 없음에 곡함은 수치이니라.

 

원헌이 명예를 소중히 하는 방법을 여쭈었다.

선생께서 답하시길,

도의가 행해지는 나라라면 출사해서 녹을 받는 것이 좋다.

무도한 나라에서 녹을 받고 싶어 출사하면 큰 치욕을 겪게될 수 있다.

 

대구가 되지 않아 풀이가 모호했는데 알기 쉽게 되어있다.

 

향당의 '빈불고'(238)도 해석이 쉽지 않은데,

 

빈불고를 보통 객이 만족해서 뒤돌아보지 않고 갔다로 해석하는데 자연스럽지 않다.

빈객은 떠날때 배웅하는 주인에게 몇번이고 돌아보며 인사하는 것이 예의이며

또 빈객이 멀어져가서 마지막 인사를 할 때까지 배웅하는 것은 주인의 예의이다.

 

알아듣게 고전을 풀어주는 책을 만나면 흐뭇하다.

막 누구에게 권해주고 싶으나, 내 전공도 아니고 그럴 기회도 없다.

 

논어는 공자와 제자들이 구체적인 생활 속에서 나눈 대화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논어는 전주곡이 없으면 알 수 없는 부분만 기록되어 남아있는 것이란 미야자키의 말은 정곡을 찌른 것이다.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과 그들을 둘러싼 정황을 이해하는 것은 바로 역사가가 전문으로 하는 일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이해의 차원 없이 단순한 한문소양과 철학만으로 논어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326)

 

옮긴이의 말에 나오는 구절이다.

논어가 한문 공부로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잘 드러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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