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계절 1
도나 타트 지음, 이윤기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소설의 장르는 다양하게 분류될 수 있겠지만,

원어 제목인 '더 시크릿 히스토리'처럼 비밀스런 역사의 한 장에 대한 골똘한 되돌아봄이다.

살인사건이 등장하니 장르소설이기도 하고,

청춘 남녀가 등장하니 청춘소설이기도 한데,

난 이 소설을 읽으며 나의 스무 살 시절로 잠시 되돌아가기도 했으니 청춘 학교소설이라 부르겠다.

 

프롤로그에서 이미 살인사건의 전모를 밝힌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필연적이지 않지만 시절인연을 따라 인과관계를 맺는 것처럼 보이듯이,

필연적이지 않아보이지만 다섯 명의 매력적인 고전동아리를 흠모하던 평범한 주인공은 그들과 어울리게 된다.

 

나 역시 집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하고 객지에서 살아보는 것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기에,

리처드라는 평범한 청년이 자기와는 레벨이 달라보이는 동아리원들과 줄리언 교수에 금세 동화되어버린 것에 실감을 느끼며 읽었다.

 

추위에 파르르 떠는 산능금꽃 위로 하늘빛이 유난히 짙던 그날 밤에 내렸던 눈이 한기가 되어,

하늘에 걸린 그 산 위에 머물게 될 것임을 예감했다.(19)

 

풍크툼이라고 했던가.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웠던 한 순간의 추억이었을 산능금꽃 위의 하늘빛이,

그에게는 '영원히 나를 떠나지 않을 풍경'으로 남는 것이다.

스스로는 볼품없다고 자격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런 소설은 참 부러움의 대상일 수도 있다.

이윤기 씨가 정성껏 번역을 했겠지만, 라틴어와 여러 가지 서양말들을 부려쓴 것들은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언감생심 불가능이다.

 

그때 처음 보았지만 헨리의 앞니 사이에 틈이 벌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 틈이 그의 웃음을 더웃 돋보이게 했다.

어떤 사건이 생기고, 그 사건을 현실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갑작스럽고 또 이상할 경우,

사건의 당사자는 기이하게도 초현실적인 느낌에 사로잡히게 될 때가 있다.

이렇게 될 경우 행동은 꿈에서 본 것인 양 하나씩 끊어져 보이게 된다.

그 경우 하찮은 것, 작은 것은 확대되면서 배경으로부터 선명한 초점으로 다가선다.(183)

 

다들 그랬을까?

열아홉까지 학교에 살았을 때는 가지지 못했던 경험을,

스물부터 가지게 되면서 초현실적인 느낌으로 남게 되는 추억들을 가지게 될까?

 

이 소설은 그런 스물 시절의 생생함을 전해주는데 그 묘미가 있는데,

부유하고 멋진 외모를 가진 세련된 그들 그룹과

평범한 리처드의 세계는 젊은이들의 상상의 세계를 그리는 데 뛰어난 은유인 듯 싶기도 하다.

나 또한 그러했으니까. 나 역시 리처드였고, 그들을 부러워하며 쫓아다닌 시절이 있었으니까.

 

인생이란 살기에 따라

국면국면이 이렇듯이 극적일 수도 있는 법이야.

그래, 인생은 어찌 보면 소설 같아.(하, 140)

 

인생이 소설 같지만, 소설도 인생같기도 하다.

그래서 소설을 읽으면 위안도 받고, 반추도 하면서 사는 것이다.

 

섬세하면서도 구역질이 나는 수백마리의 지렁이

맹목적으로, 그리고 비에 씻긴 판석 위에서 절망적으로 뒤엉겨있는 수백 마리의 지렁이...(하, 372)

 

인간의 모습이 그러하다.

엉겨서 꿈틀거리는 지렁이들처럼, 맹목적으로 살아간다.

이런 은유를 들이미는 젊은 작가라니... 참 신비롭기도 하다.

 

그는 왜 이 이야기를 요즘말로 심장이 쫄깃할 소설로 썼을까?

아마도 <칼레파 타 칼라> - 아름다움은 공포다 - 라는 말에 매혹되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장르 소설의 그 공포스러움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되는 데 공감하게 되었을지도.

 

이 소설은 하이틴 로맨스와 장르소설이 조금씩 비치기도 하지만,

그 비밀스런 역사 속에는 삶의 단면들이 그윽히 배어나기 마련이어서 젊은 작가의 공력을 느끼게 한다.

지난 번에 읽은 '황금방울새'에 비하면 이 소설이 내겐 나아 보였다.

 

파장과 에너지가 아니라면 죽음은 대체 무엇일 수 있는가.

아득한 옛날에 사멸한 별에서 지구로 날아오는 별빛같은 것이 아니면 대체 무엇일 수 있는가.

 

유령은 우리 꿈을 통해 나타난다. 왜냐.

꿈을 통해서만이 우리에게 그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아득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날아온

사멸한 별빛이 투사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477)

 

삶은 그리하여 꿈이고,

죽음이라는 관념이나 현실 역시 사멸한 별빛의 투사에 불과한 것.

이런 상념을 골똘하게 해주는 이 책은,

젊은 날들을 좀 곱씹어볼 만한 나이가 되어 읽으면 좋을 듯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