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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 - 느림으로 가는 정거장
풀꽃세상을위한모임 엮음 / 그물코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대학다닐 때, 주말이면 MT를 가곤 했다. 성북역에서 경춘선 완행을 타면 대성리, 청평, 가평, 강변 같은 이름도 정다운 역들이 있었고, 북한강을 따라 모래톱과 느린 강물, 낡은 민박집에서의 추억은 아직도 아련하다. 물론 놀이를 위해 간 MT보다는 의식화 학습을 위해 간 MT가 더 기억에 남긴 하지만, 간이역들의 허름함은 7080의 낭만 속에 묻혀 있는 것이다.
풀꽃 세상을 위한 모임이란 단체에서 10번째 상을 주었는데, 그 대상이 <간이역>이다.
풀꽃 세상은 사람에게 유용한가 아닌가와 관계없이 모든 존재들이 스스로 지니고 있는 존재 가치를 옹호하기 위한 단체란다.
간이역이 수상한 이유는 '회복해야할 느림과 반개발의 가치를 절박하게 웅변하고 있으며, 파국을 향해 달리는 우리 시대의 눈물'이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이 책의 절반 가량은 간이역에 대한 화보나 추억보다는 천성산을 감싸안은 지율 스님의 크신 사랑에 대해 나누어주고 있다.
무조건 빨리 달려야 한다는 속도 중독증을 상징하는 <고속 철도>가 멀쩡한 산을 뚫고, 없어도 되는 다리들을 놓으며, 우리 산하의 핏줄을 끊고 생명체들을 절단내고 있다. 이 물신 숭배의 대표격인 고속 철도를 겨냥한 상임에 분명하다.
과연 빠름은 느림에 비해 우월한가?
우리 시대 삶의 최고 지향은 속도인가?
작은 체구의 비구니 몸으로 국가와 자본의 욕망에 맞서 싸우시는 지율 스님의 모습은, 글이나마 차마 마주보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진정 20분을 당기기 위해서 그 짓을 해야 쓰는가 말이다.
사랑에 대안이 없듯, 생명엔 대안이 없다. 지율 스님을 어쩌자는 말인가.
경제 유령의 십자가에 매달린 한국,
새들은 곡선으로 하늘을 날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직선 속에는 사랑도 생명도 없다.
오로지 누군가의 배를 불릴 이윤의 추구, 업적을 통한 정치 권력의 창출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다.
그들의 무관심 속에서 하고사리역, 별어곡역, 다솔사역 같은 예쁜 이름의 간이역들은 날이면 날마다 사라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