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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정거장 - 장석남의 시라고 하는 징검돌 ㅣ 난다詩방 4
장석남 지음 / 난다 / 2015년 12월
평점 :
장석남이 시를 읽고 메모한 것을 엮은 책이다.
시는(문학은) 삶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데, 삶은 짧아서... 시를 읽는 일 역시 잠시 머무는 정거장처럼 스치는 느낌이다.
지금 세계는 심판이 사라진 지 오래다.
오프사이드 반칙을 하며 쳐들어오는 공을 그래도 골키퍼는 막아야 한다.
그래서 시인은 고독하다.
시인은 모든 강자들이 최후에는 가장 무서워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 고독은 피투성이지만 감미롭다.
그 골키퍼의, 시인의 손이 유심의 손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시인의 승리는 고독과 긴장과 평화와 불안이다.
오늘도 나는 신발끈을 조이고
골대 앞으로 가는 자의 그림자를 오래 바라본다.
오늘도 - 제로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서문)
골키퍼와 투수는 제로를 지키는 것이 최선인 사람들이다.
점수를 낼 수 없다. 시인이 그러하단다.
그러나, 그 고독 속에서는 긴장과 평화를 감싸안아야 하는 날이 서있다.
붉고 실한 열매 꿈꾼 적이 있다
스스로의 무제 못 이겨 떨어지는,
가을의 낙과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나 성급한 주인은
열매의 열망 기다려주지 않는다
다 익기도 전에 가지를 떠나는
저 불그스레한 얼굴의 열매들
그들이 그렇게 떠나고 가지들은 갑자기
늙어간다 젊고 싱싱한 늦가을 햇살
과원의 슬레이트 지붕이나 달구고 있다(이재무, 과수원)
다 익고 나서, 다 익히고 나서 나아가는 것, 일러 과감하다고 한다.
늦된 것만 겨우 서리 아래 여문다. 장하다.(28)
면도기가 충전이 다 되었다고 녹색등을 깜박이는 동안,
반딧불이가 난생 처음 하늘을 차고 올라 수줍은 후미등을 켜고 구애하는 동안,
대학병원에서 죽어가는 환자가 원망인지 사랑인지 모를 눈빛을 가족에게 지어보이고 있는 동안,
오늘도 세계의 어딘가에선 장착된 토마호크 미사일이 날고
사소한 약속을 지키러 나온 맨해튼 42번가의 사내는
째깍거리는 시계를 자주 보며 공허한 두 손에 피곤한
두 얼굴을 묻는다(동안, 이시영)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시인은 무엇을 할 것인가.
정치가는 무엇을 할 것이며 부자는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57)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봄, 이성부, 부분)
봄은 도덕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란 것,
그보다 더 크게, 피투성이 흙투성이로 온다는 것을
이 시는 지난 엄혹한 시대에 보여주었다.(82)
은일이라는 말이 있다. 세상을 피하여 숨는다는 말이다.
어디도 세상 아닌 곳은 없으므로 세상을 피할 수는 없다.
은자란 세속적 가치에서 놓여난 자라는 뜻일 것이다.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는 절대 꽃 피고 지는 것 볼 수 없다.
꽃은 피어도 아무에게나 꽃이 아니다.
산에는 꽃이 핀다는 말이 그래서 큰말이다.(소월의 산유화, 94)
작은 돌 하나로
잠든 그의 수면을 짐작해보려 한 적이 있다
그는 주름치마처럼 구겨졌으나
금세 제 표정을 다림질했다
팔매질 한 번에
수십 번 나이테가 그려졌으니
그에게도 여러 세상이 지나갔던 거다(수면, 권혁웅)
나 자신도 스스로 파문이다.
그러나 그 파문의 근원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다.
우리는 세상에 그렇게 내던져졌다.
'당신'은 내 눈동자에서 수없는 파문을 일으키다 사라졌다.
나 또한 그랬으리.
파문의 가장자리, 그게 눈물이다.
사랑 하나에 세상 한 번!
여러 세상이 지나간다. 눈물의 시다.(96)
시인은 여전히 컹컹거린다
그는 시간의 가시뼈를 잘못 삼켰다
실은 존재하지도 않는 시간의 뼈를
그러나 시인은 삼켰고
그리고 잘못 삼켰다
이 피곤한 컹컹거림을 멈추게 해 다오
이 대열에서 벗어나게 해 다오
내 심장에서 고요히, 거미가
거미줄을 치고 있는 것을
나는 누워
비디오로 보고 싶다
그리고 폐광처럼 깊은 잠을
꾸고 싶다(시인, 최승자)
어떠한 역사인가. 소화되지 않고 뱉어낼 수도 없는 질식의 시대가 있었다.
차라리 모든 것을 내준 폐광이고 싶다는 사랑의 눈금은 얼마나 빛나는가.
시인의 자리를 이토록 치열하게 보여준 시를 나는 보지 못했다.(100)
나아갈 길이 없다 물러설 길도 없다
둘러봐야 사방은허공 끝없는 낭떠러지
우습다
내 평생 헤매어 찾아온 곳이 절벽이라니
끝내 삶도 죽음도 내던져야 할 이 절벽에
마냥 어지러이 떠다니는 아지랑이들
우습다
내 평생 붙잡고 살아온 것이 아지랑이더란 말이냐 (아지랑이, 조오현)
아무도 아파하지 않는다.
거짓은 심이 세다. 아주 세다.
세상 모든 명령이 몸뚱이는 부를 수 있을 지 모르나 마음은 얻지 못하는 아지랑이며,
대리석에 꽝꽝 새겨넣은 우스운 묘비명들도 모두 아지랑이다.
그 소식이다.(105)
비바람에 휘청거린다.
매우 거세이다.
간혹 보이던
논두락 매던 사람이 멀다.
산마루에 우산
받고 지나가는 사람이
느리다.
무엇인가 모르게
평화를 가져다 준다.
머지 않아 원두막이
보이게 되었다.(원두막, 김종삼)
좀 과장이지만,
위의 마티에르 기법('질감')의 산수화의 주인은 어딜 가시었을까(116)
한 잔의 차를 마시며
지나치지 않음을 생각한다.
아침 신문도 우울했다.
지나친 속력과
지나친 욕심과
지나친 신념을 바라보며
우울한 아침.
한잔의 차는
지나치지 않음을 생각케한다.
손바닥 그득히 전해오는
지나치지 않은 찻잔이 온기
가까이 다가가야 맡을 수 있는
향기의 아름다움을 생각한다.
지나친 세상의 어지러움을 끓여
차 한 잔을 마시며
탁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세상의 빛깔과
어디 한 군데도 모나지 않은
세상살이의 맛을 생각한다.(지나치지 않음에 대하여, 박상천)
대교약졸이라고 했던가,
찻잔의 온기같은 이 담담한 시의 풍경과 진술 속에서 평범함의 위안과 휴식을 구한다.(131)
문을 닫은 지 오랜 상점 본다/ 자정 지나 인적 뜸할 때 어둠 속에 갇혀 있는 인형/ 한때는 옷을 걸치고 있기도 했으리라/ 그러나 불현듯 귀기(鬼氣)가 서려오고/ 등에 서늘함이 밀려오는 순간/ 이곳을 처음 열 때의 여자를 기억한다/ 창을 닦고 물을 뿌리고 있었다/ 옷을 걸개에 거느라 허리춤이 드러나 있었다/ 아이도 있었고 커피 잔도 있었다/ 작은 이면도로 작은 생의 고샅길/ 오토바이 한 대 지나가며/ 배기가스를 뿜어대는 유리문 밖/ 어느 먼 기억들이 사는 집이 그럴 것이다/ 어느 일생도 그럴 것이다(폐점, 박주택)
이면도로의 인생들을 알고 있다. 경사와 매연이 심한 가족사를 모두 처분하고 싶은 인생들을 알고 있다. 불 꺼진 인생들을 알고 있다. 그들의 얼굴의 나라의 얼굴인 줄도 알고 있다. 상점에 환한 불이 켜지는 나라를 꿈꾼다.(139)
어딘가서 보았던 시들이다.
그런데 시인은 그 시들에서 새로운 것들을 줍는다.
시집을 좀 더 사야겠다.
그러면, 얼마간 더 착해질 듯도 싶다.
나도 환한 불이 켜지는 그런 나라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