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낀다는 것 - 채운 선생님의 예술 이야기 너머학교 열린교실 5
채운 지음, 정지혜 그림 / 너머학교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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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

부르디외는 '아비투스'라는 개념을 들면서

예술에 대한 감흥 역시 세대를 거쳐 물려받게 되는 것이라 했다.

 

느낌은 내가 살고 있는 이 시공간 속에서 만들어 집니다.

그냥 느낀다고 느껴지는 게 아니라는 말이지요.(44)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7,80년대에는 서양 중심의 느낌이 주류였다.

미술도, 음악도, 예술 전반이 서양의 독무대였다.

미국 중심의 서양이 문학 권장도서 목록에도 수두룩했다.

 

물은 어떤 맛인가?

아무런 맛이 없다.

그러나 목마른 자가 물을 마시면,

천하의 그 어떤 맛난 것도 이보다 더하지 않으리라.

지금 그대는 목마르지 않다.

그러니 저 물의 맛을 모를 수밖에.(박제가, 47)

 

그리하여 내가 대학을 다니던 80년대에는 민중 예술이 주류가 되었다.

그러나 금세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정체불명의 괴물이 등장하여,

자본의 시대로 접어든다.

 

느끼는 것은 고독을 넘어가는 행위입니다.

혼자서는 느낄 수도 통할 수도 없으니까요.

느끼는 것은 다른 것과 만나고 다른 것을 통과해 가는 것.(52)

 

시간, 공간, 인간...

이 개념들에 '사이 간'을 넣은 것은 절묘하다.

그 사이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느낌이다.

사람 사이의 느낌, 장소에 깃들인 느낌, 어떤 시간대에 얽힌 느낌.

 

그러나 그 느낌은 한결같지 않다.

관점이 달라서다.

'응답하라 1988'의 절묘한 스토리 라인의 재미에 푹 빠지면서도,

왠지... 우리의 1988이 그렇게 아름다웠던가?를 반문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관점이 달라서이다.

 

우리는 뭔가를 바라볼 때 어떤 시점, 혹은 관점을 갖게 됩니다.(58)

 

가장 적절한 관점은 모든 인간 사이에 따라 다른 것이다.

그것을 보려면 두 개의 눈으로는 부족하다.

 

관세음 보살은 말 그대로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살펴보는 보살입니다.

모든 고통받는 사람의 마음을 잘 살피고 어루만져 주는 보살입니다.(67)

 

이 책은 예술 공부에 대한 책이다.

느낌이라는 것이 얼마나 얽매여 있는 것인지를 알아야 하고,

느낌이 얼마나 해방되기 힘든 것이고, 관계 사이에서 자리매김되는 것인지를 쉽게 읽어준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한 폭의 그림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해 살아가는

하나가 달라지면 전체가 달라지고 마는 그런 그림(95)

 

예술가들은 느끼기에 더 민감하다.

 

민감하단 건 차이를, 오로지 그것만의 '그것임'을 느끼는 것.(112)

 

칸트에 와서 '물 자체'와 '감각적 경험'을 구분한다.

우리가 느낀다는 것은 '물 자체'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공간에서 주어진 감각적 경험을 통하여 갖게되는 태도라 할 수 있다.

 

어떤 예술가가 위대하다고 하는 것은 화려한 테크닉을 구사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와 그걸 표현하는 방식에서 진심이 느껴지기 때문이죠.(127)

 

평범한 태도, 통념적으로 휩쓸리는 태도와 달리,

예술가들은 자신의 태도를 정립하게 된다.

그래서 잔재주로 이름을 얻어 시류에 영합하는 예술가를 보면, 저속하고 비루해 보인다.

 

달라이 라마는 말합니다.

타인과 공감하는 능력이야말로 쓸데없는 두려움과 불안을 없애고 행복감을 준다고요.

자신에게 잠재되어 있는 자비심을 끄집어 내서 타인들과 교감하라고요.

여러분의 존재 자체가 이미 感-動 입니다.(146)

 

소질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공감하는 능력이 없는 예술가들의 작품은 독자를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

시대의 아픔을 감싸안고 같이 눈물 흘리는 작품들이야말로,

심장에 꽂힌 가시처럼 아프게 느껴질지라도, 오래 교감하게 될 것이다.

 

논어에서 문질빈빈이라고 했다.

바탕이 모양새보다 크면 투박하고,

표현이 바탕보다 뛰어나면 번드르르하니,

표현과 바탕이 반짝이며 조응한 연후라야 군자다.

어느 하나도 버리기 힘든 것이지만,

이 시대에 표현이 번드르르하고 본바탕에 공감이 부족한 책팔이들이 있어

새삼 논어의 한 구절을 음미하게 된다.

 

子曰 質勝文則野요 文勝質則史니 文質彬彬然後君子니라(논어, 옹야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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