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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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글은 나름의 맛이 있다.

그의 소설에서는

묘사를 위해 말들이 물결쳐 일렁이듯 겹쳐지고 늘어지지만,

그 말들은 헤설프게 흩어져버리진 않고,

마음 속에 더 짙은 생각들의 앙금을 가라앉게 만들면서 수런거리며 퍼진다.

 

이 수필집은 수이 읽히지 않는다.

'밥벌이의 지겨움'과 겹치는 느낌이 강하다.

그저 그렇다.

그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형상화되어가는 인물들을 통해 나의 의식을 이리저리 뒤척여보는 경험들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책을 읽으면서는 별로 뒤척일 것이 없었다고나 할까.

 

새벽의 꿈에,

배 빠진 맹골수로에도 사월이 와서 봄빛이 내리는 바다는 반짝이는 물비늘에 덮여 있었다.

그 바다에서 하얀 손목들이 새순처럼 올라와서 대통령의 한복 치맛자락을 붙잡고,

친박 비박 친노 비노 장관 차관 이사관 들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우는데,

바짓가랑이들은 그 매달리는 손목들을 뿌리치고 있었다.

그 바다는 국가가 없고 정부가 없고 인기척이 없는 무인지경이었다.

손목들은 사람 사는 육지를 손짓하다가

손목들끼리 끌어안고 울었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기진하였다.(120)

 

'돈'이라는 파트의 한 구절이다.

그래.

돈이 세상을 이렇게 더럽게 만들었으니, 더 이상 글이 찰지게 나오기 힘들겠구나 했다.

 

국가 개조는 안전관리와 구조구난의 지휘부와 조직을 재조립하는 것이 아니라,

뉘우침의 진정성에 도달함으로써만 가능할 것이다.

뉘우침의 진정성 위에서 자신을 바꾸어 나갈 수 있다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서 뭉개다가 무너질 뿐이다.(176)

 

눈에 눈물이 어리면 그 렌즈를 통해 하늘나라가 보인다.

사람은 고난을 당해서만 까닭의 실꾸리는 감게 되고

그 실꾸리를 감아가면 영원의 문간에 이르고 만다.(함석헌)

 

글에 슬픔이, 한이 가득 묻었을 때는

글이 매끄럽게 죽죽 나아가지 않을 것이다.

뭔가 이물감이 들어 껄끄럽게 자꾸 뒤적거리게 될 뿐이다.

 

김훈의 재치가

성석제의 그것처럼

한들거리면서 '인간 삶의 던적스러움'에 대해서 넌덜머리를 내고 있음이 보이는 글들이다.

 

아, 다시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갈 수는 없으려나?

하긴, 응답하라 1988에서 묘사한 것처럼, 세상은 분홍빛이고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올림픽이 일어나던 그 해에도,

구사대의 폭력과 노점상들에 대한 국가 폭력은 여전히 징그러웠던 것이니...

 

얼마 전에 나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나는 라면을 먹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 시절을 먹고 싶어 하는 거라고.

무지개를 찾는 소년처럼 헛되이,

저 멀리에서 황홀하게 빛나는 그 시절을 되찾으려는 것이라고.(성석제, ‘라면의 맛중에서)

 

 

이런 재미난 글을 읽으면서 낄낄 거리는 날들이

다시 올 수나 있을 것인지...

날이 흐리고 다시 기온이 급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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