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세상 맑은 말 - 정민 교수가 가려 엮은 명청 시대 아포리즘
정민 지음 / 해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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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세상'은 언제나 그런 모양이다.

'맑은 말'은 '청언'이라고 하는데, 자신을 일깨우는 말이나, 부유함을 부러워 말라는 경구이기도 하다.

 

정민의 이 책은 그야말로 청언 소품의 원문과 번역한 부분을 싣고, 간단한 자신의 사색을 담은 책이라 가볍다.

 

속마음 서로 훤히 비추어 보매

천하와 더불어 함께 가을 달빛 나누고 싶고,

의기가 서로 투합하니

천하와 더불어 따스한 봄바람 속에 앉아 있고 싶구나.(31)

 

요즘은 인터넷으로나마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을 만날 수 있다.

그렇지만 요즘도 주변에서 나만 이상한 사람처럼

모두들 세상살이에 별 문제도 못 느끼며 살고 있다는 걸 느낄 때 나는 무척 외롭다.

직접 사람을 만나는 일 외에는 소통이 불가능하던 시절,

논어의 첫구절도 '학문을 즐기는 이'가 '친구를 만나는 일'이 즐거움이라 할 만 했을 것이다.

 

일찍 혼인해야 한다고 말하지 말라.

혼인한 뒤로는 할 일이 적지 않다.

승려나 도사가 부럽다고 말하지 말라.

승려나 도사가 된 뒤에는 마음이 편치 않다.

다만 만족을 아는 이는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며 새벽까지 달게 자고,

오직 한가로움을 즐길 줄 아는 이는 편안하게 늙음에 이른다.(44)

 

결혼이 늦다고 쓸데 없이 걱정하고,

자신의 번잡한 처지를 늘 불평한다.

다 마음의 번잡을 안고 살아 그렇다.

그런데, 한가함을 즐기는 것에 대해서도 역시 경계를 한다.

 

젊은 시절에는 편안한 환경에 안주해서는 안 되고,

늙어서는 역경에 처해서는 안 된다.

중년에는 한가로운 경계에 놓임이 좋지 않다.(49)

 

특이한 것이 '중년'이다.

은퇴한 나이가 되기 전까지가 중년일 터인데, 그때 이미 한가로운 경계만을 추구하는 일에 조심하란 뜻이다.

 

젊은 시절의 독서는 벽틈 사이로 달을 엿봄과 같고,

중년의 독서는 뜰 가운데서 달을 바라보는 것과 다름없다.

노년의 독서는 누각 위에서 달을 즐김과도 같다.(124)

 

그렇다.

중년은 일도 열심히 해야하지만, 독서도 부지런히 해야한다.

젊은 시절은 가슴이 뜨겁지만 전체를 보기 힘들다.

중년이 되면 달을 바라볼 수는 있게 된다. 그렇지만, 노년이 된다면, 그 풍광을 즐길 수 있다고 하니, 참 좋은 말이다.

(책에서는 '달 구경'이라고 했으나, 玩月은 그저 구경하는 것만은 아닌 듯 싶다.)

 

고요함 속에 위엄이 깃들고

조급함 속에 위엄은 사라진다.(65)

 

나이가 들면 조급함이 조금씩 사라진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위엄이 저절로 생긴다.

그런데 나이들어 추한 모습이 입을 자꾸 벌리는 일이다.

조급히 입을 열지 말고, 지갑을 열 일이다.

 

남을 증오하는 모습은 술잔에 떨어뜨리고,

세상을 슬퍼하는 마음은 시구 속에 감추어 둔다.(72)

 

시의 소용은 그런 것이다.

세상에 분노할 때, 세상사가 뜻같지 않을 때... 감추어 두는 용도.

 

책을 쌓아두기만 하고 읽지 않는다면 책가게의 책장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읽기만 하고 실천할 수 없다면 이른바 두발 달린 '책장'이다.(137)

 

반성할 노릇이다.

도서관장을 하면서 책을 사서 부려 놓고는, 욕심만 많다.

내 몸이 책장과도 같다.

소중한 책을 가지는 '장서가'는 못되더라도,

스스로가 그저 책장이나 되어버리는 일은 없어야겠다.

올해는 많이 읽고, 읽는 족족 책을 내가야겠다.

 

산에서 지내는 네 법이 있다.

나무는 줄지어 심지 않고, 바위는 제멋대로 생긴대로 놓아두고,

집은 거창하게 짓지 않고, 마음에는 속된 일을 들이지 않는다.(182)

 

세상과 어울리는 법은 가만히 씩 웃는 데 있고,

세상을 초탈하는 법은 차갑게 반만 말함에 있다.(210)

 

應世法 微微一笑 度世法 冷冷半語

 

'응세'를 사전에서 찾아 보면,

세상() 형편(便)에 따름

이라 되어 있고,

'도세'는,

①삶과 죽음의 현실()을 극복()하고 열반()에 들어감  ②도생(). 중생()을 제도()함

이라 되어 있다.

 

응세는 처세와 비슷할 것이고, 도세는 초월자에 비슷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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