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시비돌이 > 최상천 인터뷰 - 노무현과 유시민은 새 판을 짤 능력이 있다

 

'알몸 박정희'의 저자 최상천 선생과 유시민 의원의 보건복지부 장관 기용의 의미에 관해 나눈 대담 내용입니다.


* 노무현과 유시민은 새 판을 짤 수 있다


지 - 노무현 대통령이 여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유시민 의원을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하면서 굉장한 논란이 벌어졌지 않습니까?


최 - 참 놀랐습니다. 문제를 이성적으로 접근하는 국회의원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습니다. 유시민은 왜 안 되는지 이유가 없어요. 무조건 반대만 하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이 법을 제정한다고 생각하면 아찔해요. 법도 이성이 없을 테니까요.


지 - 김현미 의원 같은 경우는 "동네 아저씨들이 유시민이 장관 되는 것을 말려달라고 하더라"는 얘기를 했는데요.


최 - 국회의원이 동네 아저씨들 얘기를 들먹이는 것 자체가 한심하죠. 자기 의견을 말해야죠. 감정적인 얘기 하지 말고 합리적 이유를 제시해야 하고요.


  유시민 의원이 보건복지부 장관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려면, 전문성이 있느냐 없느냐, 업무수행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 도덕성에 문제가 있느냐, 이런 얘기를 해야 국정을 논하는 국회의원답죠. "유시민은 싸가지 없다"거나, "동네 아저씨들이 싫어한다"는 따위 감정적인 얘기를 하면 곤란하죠. 요즘은 동네 반장도 그런 수준은 넘습니다.


지 - 그러면 유시민 장관 기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한 셈인데요.


최 - 제가 보기에는 유시민은 보건복지부 장관 적임자입니다. 사회복지에 대한 전문성이나 의지가 충분한 사람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유시민 의원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명한 것은 아주 잘 한 일입니다. 세 가지를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는 유시민 의원이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부자들의 경제학보다는 시민 경제, 서민 경제에 더 큰 관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보건복지부에 딱 맞는 사람이죠. 국회에서도 보건복지위원회에 있었고요.


둘째는 노무현 대통령이 유시민, 천정배, 정세균 이런 사람들을 예로 들면서 차세대 지도자를 키운다고 했는데요. 유시민은 차세대 리더로도 꽤 괜찮아 보입니다. 노 대통령이 안 키워줘도 스스로 클 수 있는 사람이기는 하지만요. 그래도 '청와대 거름'까지 주면 더 잘 크지 않겠어요?


노 대통령이 새판 짜기를 시작했다


지 - 또 다른 이유도 있을 것 같은데요.


최 - 이 대목이 제일 중요한데요. 제가 보기에 노 대통령은 지금 유시민 의원을 통해서 새판 짜기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간부들과 모임에서 탈당 얘기를 흘렸는데, 그게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닐 겁니다.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의원 70% 이상이 재수 좋아서 뺏지 단 사람들이란 걸 잘 알아요. 이런 사람들이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할 수 없다는 사실도요. '새로운 대한민국'은 새로운 생각이 만들어내는데 그 사람들은 감정만 있고 생각이 없으니까요.


  정치인 중에서 유시민만큼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 없어요. 대부분이 고리타분한 고정관념이나 상투적인 사고방식에 빠져 있거든요. 이런 사람들은 좋다, 싫다, 재수 없다는 따위 감정에 따라 행동하죠. 이번에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님들께서 시범을 보여주셨잖아요.


  저는 한국 대통령은 반드시 이성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성이 없는 감성은 너무 위험합니다. 황우석 사태를 보세요. 한국인이 감성의 늪을 얼마나 깊이 빠져 있는지 드러났잖아요. 1등, 최고, 승리, 조국, 민족, 이런 말만 나와도 제 정신이 아닙니다. 황우석이 이런 주문을 외자 나라 전체가 종교적 분위기에 빠져버렸어요. 이런 나라에서 이성을 가진 정치인은 너무 소중합니다. 대통령이 황우석 식 주문을 외우면 나라가 어디로 가겠어요.


  열린우리당이 유시민 의원의 장관 기용을 반대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유시민이 판을 깰 수 있는 능력도 있고 새 판을 짤 수 있는 능력도 있다는 것입니다. 노무현이나 유시민이나 현실에 순응하거나 추종하지 않는 정치인입니다. 현실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 판을 깨기도 하고 새 판을 만들기도 합니다.


  유시민의 장관 기용을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건 정동영, 김근태 두 사람 다 비슷한 것 같습니다. 특히 정동영 측에서 감정적인 반발을 하고, 막말까지 하는 지경인데, 제가 보기에는 정신 나간 사람들 같아요.(웃음) 그러니까 정동영 전 장관이 열린우리당 내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 판도에 차질이 있을까 봐 날뛰는 겁니다. 하지만 정동영 지지세력들은 이걸 알아야 합니다. 열린우리당에서는 부동의 1위지만, 실전에서는 무조건 떨어집니다.


지 - 지금 열린우리당에서 거론되는 대권 후보들을 보면 예전에 '이인제 대세론' 나올 때의 이인제 의원 정도의 위치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최 - 이 기회에 말씀 드리고 싶은데요. 열린우리당의 대선후보는 정치적 능력이 입증된 스타, 20~30대의 유권자들한테 돌풍을 일으킬 수 있는 스타 성향의 후보가 나오지 않으면 이명박이나 박근혜에게 무조건 집니다. 정동영이나 김근태 정도로는 이명박의 업적과 박근혜의 후광을 이길 수 없어요. 그런데도 당내 1위에 집착하는 모습은 안타깝죠.


노무현과 유시민은 독립적 정치인이다


지 - 노무현 대통령이 왜 하필 유시민 의원을 고집했을까요?


최 - 우선 노무현과 유시민이라는 두 사람을 봅시다. 두 사람은 기질이나 성향이 거의 비슷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코드가 맞는 정도가 아니고 정치적 DNA가 99% 일치해요. 한번 살펴볼까요?


  첫째로 노무현과 유시민은 합리적 사고와 행동을 하는 사람입니다. 독재와 권위주의를 생리적으로 싫어해요. 말을 들어보면 억지가 거의 없어요. 상식과 고정관념에 묶여 있지도 않아요. 그러다 보니까 정치적 손익에 연연하지 않고 소신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입니다. 두 사람은 남의 시선이나 정치적 손익보다 자기의 원칙과 가치를 추구하는 스타일이죠.


  노무현 대통령을 봅시다. 그때 당시로서는 정치인이라면 감히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요. 국회의원이 현대중공업 파업현장에 가서 노동자들 앞에서 대중연설을 했습니다. '빨갱이' 소리를 들을 줄 몰라서 그랬겠어요? 떨어질 줄 뻔히 알면서도 부산에서 세 번이나 출마했고요. 합리적 사고를 하기 때문에 잘못된 상식과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겁니다. 자리에 연연하고 보스 꽁무니 따라다니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그런 행동 못하죠.


  이런 면은 유시민도 마찬가지입니다. 국회에 첫 등원을 하면서 평상복 입고 등원하지 않았습니까? 얼마나 욕을 먹고 야유를 받았습니까? 그래도 "도대체 옷 가지고 왜 그러세요?"라는 듯이 자신만만했거든요. 그 다음에 "국기에 대한 맹세 잘못된 것이다"는 얘기를 했는데, 백번 옳은 얘기죠. 그렇지만 정치인이 하기에는 쉽지 않은 얘기거든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얘기하고 행동하는 겁니다.


  이런 합리적 사고와 행동 자체가 '한국적 상식'에 젖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도발이고, 이단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노무현, 유시민한테는 열렬한 지지자도 많지만, 경박하다느니 하는 비난이 끊이지 않는 겁니다. 이런 면에서는 두 사람은 타고난 '왕따 체질'일지도 모릅니다. 상식과 고정관념을 뛰어넘으면 왕따가 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또 두 사람은 패거리를 생리적으로 싫어하는 사람 같아요. 둘 다 개인의 능력으로 성공한 인물들 아닙니까? 유시민이나 노무현이나 보스가 결정하면 따라가고, 패거리를 위해 무슨 짓이든 하고, 그런 사람이 아니거든요. 기꺼이 소수가 되고, 과감한 정치적 홀로서기도 여러 번 했죠. 이런 면에서는 두 사람 다 특이한 인물이죠. '독립적 정치인'이라고 할까요?


독립적 정치인은 왕따가 될 수밖에 없다


지 - 그런데요. 이렇게 거리낌 없이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 패거리를 거부하고 정치적 홀로서기를 감행하는 것, 이런 독보적인 행동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능력이 있어야 '독립적 정치인'이 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능력 없이 그랬다간 그 날로 죽을 것 같은데요.(웃음) 노무현과 유시민은 어떤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씀인가요?


최 -  대부분 정치인들은 상식이라고 할까, 통념이라고 할까, 고정관념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거기서 벗어나면 표가 떨어지니까요.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상식, 통념, 고정관념 같은 것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것 같습니다.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생각할 줄 안다는 거죠. 이런 자질은 변화와 개혁이 필요한 시기에는 반드시 갖춰야 될 리더의 자질입니다.


  제가 보기에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 자신감이 두 사람의 특별한 자산입니다.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새로운 정치기획이라고 할까, 역사기획이라고 할까, 이 두 사람은 그런 걸 할 줄 압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판을 바꿀 수 있고 역사를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소한 역사에 손톱자국은 낼 수 있습니다.


  제가 볼 때 한국에서 정치기획, 역사기획을 할 수 있었던 인물은 김대중 전 대통령 정도를 꼽을 수 있습니다. 작년 인터뷰 때 4강외교를 이야기 했죠. 4강외교라는 것이 사실은 미국의 종속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주적인 기반을 굳히고, 평화통일을 위한 일종의 역사기획이거든요. 이것은 6.15 공동선언으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아무튼 김대중처럼 당대의 상식, 통념, 고정관념 이런 걸 과감하게 뛰어넘은 인물이 아주 드물게나마 있습니다. 새로운 사고를 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저는 정치기획능력, 역사기획능력이라고 하는데, 노무현과 유시민은 현재의 정치인 중에서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단 두 사람입니다.


지 - 그런데 대중 지지도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최 - 노무현 대통령이 잘못 한 점도 많습니다. 양극화 해소를 위한 노력을 거의 안 했고, 박근혜와 손잡기 위해 대연정을 제안하고, 그런 얘기는 전에 <노무현의 박근혜 시나리오> 인터뷰 때 이미 얘기했으니까 여기서 다시 하지는 맙시다.


하지만 노무현 같은 사람이 왕따가 되는 건 인식 차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습니다. 군사정권 때 김대중은 전국민적 왕따 아니었습니까? 얼마 전까지 PD수첩이 얼마나 왕따 당했습니까? 문제를 이성적으로 제기하다 MBC 말아먹을 뻔했죠. 원희룡 의원, 한나라당에서 완전히 왕따 아닙니까? 그런데 원희룡 의원이 잘못 된 건 아니잖아요. 지금 한국사회처럼 좋고, 싫은 감정만 폭발하는 사회, 패거리가 활개치는 사회, 이성적인 접근, 합리적인 이해를 거부하는 사회에서는 이성적인 사람이나 조직이 왕따를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조선일보 부수와 한겨레 부수를 비교해 보세요. 5 대 1쯤 될 것 같아요. 한겨레도 왕따 신문이죠.


이런 인식 차를 극복하자면 계기가 필요합니다. 어떤 중요한 시기가 오면 왕따가 이겼거든요. 김대중과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잖아요. 평소에는 왕따를 당하지만, 이 사람들이 정치기획능력, 역사기획능력이 있으니까 그걸 가지고 대중을 설득하고, 견인하고, 이런 활동을 통해서 자기의 정치적 목적도 달성하고, 역사도 바꿨습니다.


문제는 정치기획, 역사기회 능력이다


지 - 혹시 유시민의 장관 기용이 노무현 대통령의 다음 대선을 위한 큰 그림 중의 하나가 아니냐는 우려가 당 내외의 반발을 가져온 것 같은데요. 유시민 의원을 대선 후보로 내세우지는 않더라도 장관에 기용함으로서 정치판을 바꾸려는 음모가 있지 않느냐는 공포감을 가진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던 지난 대선에서 이겼고, 기껏 탄핵해놨더니 되치기로 국회 판도를 바꿔버렸습니다. 이번에도 뭔가 반전을 기획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거죠. 노 대통령 나름의 큰 그림이 있다고 보십니까?


최 - 물론 있겠죠. 지금 문제가 뭐냐 하면, 노무현과 유시민이 이미 정치기획, 역사기획 능력을 보여줬고, 지금도 여전히 그런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기득권층에게는 엄청난 두려움이거든요.


예를 들면 노무현은 조선일보에 정면도전 했습니다. 제가 볼 때 조선일보를 이용한 거거든요. 조선일보가 한국 최대의 신문 아닙니까? 여기와 맞붙으면 노무현은 자연히 조선일보와 맞붙은 유일한 정치인이 되는 겁니다. 한마디로 일시에 거물이 되는 거죠. 노무현은 조선일보의 힘을 이용해서 대선 후보로 일시에 부각되어 버린 겁니다. 일종의 차력정치를 한 거죠. 그래서 제가 노무현 대통령을 만든 1등 공신은 조선일보라고 했던 겁니다.


제가 볼 때는 탄핵도 그렇거든요. 탄핵은 분명히 노 대통령이 유도했어요. “나 잡아 봐라!”고 한 거죠. 한나라당 의원들이 돌아버렸어요.(웃음) 난장판을 치도록 만든 겁니다. 그렇게 해서 정치판을 바꿔버린 거 아닙니까? 이렇게 볼 것 같으면 노무현은 정치기획에는 거의 천재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시민도 그런 경향이 있어요. 학창 시절에 썼던 항소이유서는 역사적 문서가 되었습니다. 운동권이 빨갱이가 아니라 민주화를 위한 순수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감동적으로 보여줬습니다. 운동권의 정당성 확보에 이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 글은 없을 겁니다.


유시민은 한국 최초로 인터넷 정당을 창당하기도 했습니다. 불과 몇 달 사이에 3~4만 명의 진성당원이 참여하는 개혁당을 만들었습니다. 획기적인 시도였습니다. 개혁당은 대선과정에서 엄청난 일도 해내지 않습니까? 노무현 대통령 당선의 가장 중요한 동력이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유시민도 무언가 새로운 것을 구상하고 만들어 낼 수 있는 기획능력과 실천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노무현과 유시민 두 사람은 판을 깰 수도 있고, 새로운 판을 짤 수도 있고, 평지풍파를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는 김대중의 대를 이을 수 있는 정치인이죠.


유시민 기용은 노무현의 대선기획이다


지 - 유시민 의원이 다음 대선 후보로 떠오를 가능성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최 - 그건 지금 얘기하지 맙시다. 지켜봐야 할 것 같고요. 유시민이 그런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정도만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여하튼 노무현 대통령은 유시민 의원이 그런 인물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노 대통령이 자기와 DNA가 같은 사람을 몰라보겠어요?


지 - 유시민 의원을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한 것은 노 대통령의 대선기획의 연장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지금까지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후보, 또는 차세대 리더가 될 만한 사람들을 장관으로 등용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정동영, 김근태, 천정배 장관 아닙니까? 이번이 네 번째인데요. 지금 말씀을 들어보면 유시민의 장관 기용은 그 전과는 또 다른 의미가 있는 듯 한데요.


최 - 제가 보기에도 그 전과는 다릅니다. 정동영, 김근태, 천정배한테는 장관 자리를 준 것입니다. 그러나 세 사람 다 그리 성공적이지는 않습니다. 정동영 장관은 6자 회담이 성사되면서 약간 빛을 봤습니다만 뭘 기획하지는 못 했습니다. 김근태 장관은 대선후보로 나갈 생각이 있는지조차 의심이 들 정도로 무기력했습니다. 천정배 장관은 강정구 교수 불구속 수사 원칙을 천명하면서 자기의 소신을 명확하게 내보였다는 면에서 일단 주목을 해볼만한 인물입니다. 그렇지만 그 이후에 검찰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너무 몸조심만 하는 게 문제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검찰 개혁인데, 그걸 전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 사람하고는 다르게 유시민은 정치기획, 역사기획을 할 수 있는 사람이거든요. 그러니까 단순이 장관을 맡은 게 아니란 뜻입니다.


지 - 유시민 의원이 이번에 당의 전면적인 반대를 보고 좀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는데요.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구요. 그걸 보고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은 “할 말 다 하던 사람이 장관 되려고 저런다. 그걸 보니 더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천정배 장관이 검찰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것처럼 유시민 의원도 그런 상황에 빠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최 - 보건복지부 장관 자리는 좀 다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획기적인 복지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는 자리거든요. 사실은 김근태 장관이 그런 일을 했어야 하는데 전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시민 의원이 보건복지부 장관을 하면서 나라사람(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복지 제도를 만들고 재원 마련 방법까지 제시한다면 다음 대선은 특별한 대선이 될 수 있습니다.


이성과 공공성이 회복되고 있다


지 - 다음 대선은 어떤 대선이 될 것 같습니까?


최 - 제가 보기에 지금 한국은 역사적 전환을 하고 있거든요. 자세한 얘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최근에 일어난 두 가지 일을 가지고 말씀드리죠.


작년 연말은 황우석 교수 사건으로 나라뿐만 아니라 세계가 시끄러웠지 않습니까? 정말 우리가 어쩌다가 이렇게 한 개인의 장난에 놀아났는지 참 어이가 없죠. 그렇지만 이 사건에는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사건에는 아주 의미 있는 새로운 흐름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사람 뿐 아니라 세상이 황우석에 대해서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을 때, 사이언스라는 세계적 과학 잡지에서도 그의 논문을 자랑하고 있을 때, 황우석이 국가적 영웅이 되어 있을 때, 그리고 황우석의 맞춤형 줄기세포가 신화적 힘을 가지고 있을 때, PD수첩은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PD수첩은 황우석의 주장을 꼼꼼하게 짚어보고, 그의 연구와 활동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문제 제기가 있자 여론이 빗발쳤죠. PD수첩은 반민족적인 방송으로 몰렸고 악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조중동이 앞장 섰습니다. 21세기 한국이 중세 유럽으로 돌아간 겁니다. 워낙 네티즌들의 공격이 격심해서 광고가 떨어져 나갔고, 결국 PD수첩을 중단하지 않을 수 없었고, MBC는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태에도 불구하고, MBC와 PD수첩은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오직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끝까지 이성적으로 접근했습니다. 이런 힘든 과정을 통해서 PD수첩은 황우석 사기극의 진실을 밝혀내고 한국인에게 이성의 힘을 일깨워 줬습니다. 제가 알기로 이런 규모의 ‘이성의 승리’는 대한민국 건국 이후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 하나의 사건은 사립학교법 개정입니다. 과거의 사립학교법은 실질적으로 학교를 사유재산으로 인정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교주(학교 주인)가 마치 사유재산권 행사하듯이 학교를 운영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유재산권적 교육 체제를 공공교육으로 바꾸는 것이 이번 사립학교법 개정의 핵심입니다.


얼른 보면 한국 사회는 엄청난 혼란을 겪고 있고, 수렁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속을 들어다 보면 새로운 흐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핵심은 한국 사회, 한국 사람이 이성과 공공성을 회복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군사정권 시대에는 공포의 시대를 살다가 87년 민주화 이후 감성이 회복되면서 감성시대를 거쳐, 지금은 이성이 회복되어가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 핵심은 합리성의 회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거대한 역사적 변화에 대해서는 다음 인터뷰에서 자세하게 얘기하도록 합시다.


이성적 대선 : <사유재산권 대 공공성>의 대결


지 - 한국이 감성에 매몰되어 있던 시대로부터 이성을 회복하고 있다. 그리고 사유재산권 중심에서 공공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런 말씀인데요, 이런 새로운 흐름이 유시민 장관 임명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최 - 노무현 대통령과 유시민 장관의 생각과 행동방식을 볼 때 다음 대선을 이런 방향으로 끌고 갈 것 같습니다. 즉 공공성이 최대 쟁점이 되는 대선으로 만든다는 거죠.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 노중동, 그리고 재단과 교장들의 결사적인 저항과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사립학교법을 밀어붙이는 것을 보면 그런 의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대선은 부자들을 위한 사유재산권 중심 사회에 머물러 있을 것이냐, 아니면 사회안전망을 갖춘 시민 사회로 나아갈 것인가? 이 싸움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지역대결과는 전혀 다른 선거를 기획하자는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역대결 극복을 그렇게 끈질기게 강조한 것을 상기해 보십시오. 새로운 선거를 꿈꾸지 않겠습니까?


다음 대선은 부자들의 나라를 추구하는 후보와 시민의 나라를 추구하는 후보의 역사적 싸움이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유시민 의원이 이걸 기획해낼 수 있느냐는 겁니다. 정동영, 김근태, 이명박, 박근혜, 손학규가 어쩌고 하는 그런 수준이 아닙니다.


대선의 핵심 주제를 <사유재산권 대 공공성>의 대결로 기획하는 데는 보건복지부 장관 자리가 적격입니다. 이 기획은 단순한 대선기획을 넘어서서 정치기획 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역사기획이라고도 할도 수 있습니다. 유시민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명할 때는 노 대통령이 이런 임무도 주지 않았겠느냐 하는 겁니다.


지 - 그런 대선기획을 기대하고 유시민을 임명했다는 말씀인데요. 말씀을  듣다 보니까 다른 사람들이 유시민을 경계하는 부분이 이런 상황을 걱정해서 일 거란 생각이 드는데요. 불과 몇 달 동안에 새로운 정당을 만들고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유시민의 힘을 똑똑히 봤으니 말입니다.


최 - 그럼요.


지 - 하지만 유시민 의원 측에서도 이 인터뷰를 달가워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견제가 더 심해질 것 같거든요. (웃음)


최 - 그런 건 제 관심 밖입니다. 저는 유시민 개인이 어떤 결함을 가지고 있느냐 그런 것 가지고 얘기하는 수준은 아니어야 된다고 봅니다. 사람이 어쩌니 하는 그런 문제도 물론 있겠죠. 그러나 제가 유시민을 주목하는 것은 정말 역사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그것입니다.


대선 판도가 바뀐다


지 - 만약에 유시민 장관이 그런 임무를 완성한다면 대선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판도의 대선이 될 것 같습니다.


최 - 전혀 다른 대선이 될 것입니다. 지역대결 선거를 넘어 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최초의 이성적 대선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유럽에서 사회민주당과 기독교민주당이 초기에 이념 대결할 때 수준의 역사적 대결이 될 겁니다. 이 선거는 복지국가로 가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저는 복지국가를 주장하는 사람은 아니고, 사람나라를 주장하는 사람이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복지국가로 가는 것만도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지 - 유시민 의원이 국민연금 인상에 대한 총대를 메고 들어가는 거 아니냐는 말도 있는데, 그래서 일부 시민단체에서 반발하고 있지 않습니까?

최 - 연금제도는 손을 봐야 됩니다. 부담에 비해 수익이 너무 높아요. 못 견딥니다. 이건 다음 세대 착취거든요. 새끼 등쳐먹는 건 안 되잖아요.(웃음) 개인적으로 자식 등쳐 먹는 거 안 된다고 하면서 사회적으로는 다음 세대를 등쳐먹으려고 합니까? 그거 안 됩니다. 합리적으로 고쳐야 됩니다.


다음 대선은 감정 싸움이 아니라 이념 싸움이고, 정책 싸움이 되는 겁니다. 회사, 학교, 신문사 등등을 사유재산으로 취급하려는 부자당 대 사회복지를 확충하려고 하는 시민당의 싸움이 될 것입니다. 유시민 의원이 어떤 사회복지를 기획하느냐에 따라 그 양상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저는 유권자 70% 이상을 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복지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제발 그런 복지제도를 만들어줬으면 좋겠습니다.


지 - <부자당 대 시민당> 대결이라고 하니까 공교롭게도 어떤 분의 이름에 시민이 들어가 있네요. 오해의 소지가 있겠는데요.(웃음)


최 - 오해하려고 작정하면 무슨 말을 해도 오해합니다.(웃음)


지 - 그 동안 보건복지부 장관은 그 정도의 역할을 할만한 실세장관이라고 볼 수 없었던 것 같은데요. 하기에 따라서 다르다는 말씀인가요?


최 - 그럼요. 어떤 자리도 누가 앉느냐에 따라 전혀 달라집니다.


지 - 김근태 장관이 두드러진 역할을 못했던 이유는 뭐라고 보십니까?


최 - 그 사람 성품 같아요. 문제의식이 너무 온건해서 문제를 제대로 짚고, 이것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아요.


조금만 지켜보자


지 - 이런 대선이 되면 대선 판도가 낙관적일 거라고 보십니까?


최 - 만약에 이런 흐름이 형성된다면 다음 대선은 지금까지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갈 것 같습니다. 작년초까지는 열린우리당이 무조건 이긴다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6월쯤부터는 한나라당이 압도해서 열린우리당은 누가 나와도 깨진다는 분위기가 됐습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는 최근의 여러 사태, 황우석 사태를 비롯해서, 사립학교법, 유시민 장관 임명이라든지 이런 과정을 쭉 지켜보니까 저는 반전될 것 같습니다. 이미 반전의 길로 들어섰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첫째 이유를 들 것 같으면 한나라당이 사립학교법 수렁에 빠져서 전혀 나오고 있지 못합니다. 한나라당은 이것 때문에 엄청난 타격을 받으리라고 생각됩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학교가 사유재산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학교 재단 관계자, 교장 이런 사람들 뿐이거든요. 나라사람 전체로 봐서도 10%도 안 될 것입니다. 대다수는 학교가 공공기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잖아요.


스스로 앞날까지 막고 있습니다. 교사들을 빨갱이로 몰아부치고 신입생까지 안 받겠다니 미래의 유권자인 학생도 등지는 것 아닙니까. 이런 행동에 지지를 보내거나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아야 20%를 넘지 않을 것 같아요. 그것도 60대 이상에 한정되구요. 그래서 이렇게 가면 부패당 이미지에다가 부자당 이미지, 재산당 이미지까지 얻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완전히 반서민 정당 이미지가 굳어지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한나라당도 지금까지는 서민을 위한 척이라도 해왔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노골적으로 부자당 행세를 하면 길이 있겠습니까? 거기다가 유시민 변수는 대선 판도에 평지풍파를 일으킬 수 있는 어떤 잠재력이 있다고 봅니다. 이런 추세로 가면 금년 전반기를 넘으면 한나라당은 상당히 기세가 꺽이고, 열린우리당이 많이 회복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때 가서 대선후보가 누가 되고, 판세가 어떻게 되고 하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예상할 수도 없고, 예상해봐도 무의미합니다. 여러 가지 생각해본 것이 있지만, 지금 얘기할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지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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