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처음 담임 반 배정 받을 땐 에이 다리 아프게 4층이야 했더니 높은 교실에선 툭 트인 하늘 아래 강줄기가 시원하더군. 1층 낮은 교실 수업 갈 땐 답답하지 않을까 했더니 잎새에 지는 빗방울 흔들리는 작은 풀꽃들이 아름다웠지. 낮은 연못가에선 금붕어 하늘거리는 지느러미 가만히 떠오른 자줏빛 수련이 그윽하고, 꼭대기층 옥상에선 그 연못 굽어보는 키 큰 나무들의 다정한 침묵이 깊더라. 삶이란 게 한 곳에만 머물 수 없어 여기저기 옮기다 보면 한동안은 여기에 없는 거기의 것만 생각나지. 그러다 또 새로 둘러보면 거기서 못 보던 게 여기에선 보인다. 따지고 보면 빙글빙글 돌아가는 이 둥근 별에서 좋은 위치 나쁜 위치란 애초에 없는 게 아닐까.

 

교실만 무너지나

하늘이 가려지고
산이 깎여지고
들판이 포장되고
짐승들이 멸종됐는데
하늘처럼 산처럼 들판처럼 짐승처럼
아이들만 높고 깊고 풍요하고 순수하길 꿈꿨나

마을이 예전에 사라지고
이웃이 다 끊어지고
집이 텅 비어버렸는데
지구가 온통 무너져 가는데
교실만 온전하길 바랬나
학교만 별천지로 남아 있길 바랬나.

 

호박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풀밭에도
정성스레 손질한 밭이랑 가에도
호박 넝쿨은 쑥쑥 뻗어 있다.
넓은 이파리 노란 꽃도
시원스레 넉넉하지만
하늘 가린 이파리 밑으로
푸짐하니 버티고 앉은
조선 호박의 후덕함.
제 얼굴 드러내어 우쭐대지도 않고
웬만한 비바람에는 끄떡도 않지
시들어 가는 잡초들 속에서
무심한 듯 덤덤한 듯
누렇게 익어 가는
조선 호박의 의연함.

늦은 가을 할머니는 이 둥근 호박을 따서
마루에 재어 두었다가
아들네도 딸네도 두어 덩이씩 실어 보낼 것이다.
허전할 때 호박떡에다 호박전도 붙여 먹고
겨울 저녁엔 호박죽도 끓이고 푹 고아서 약으로도 쓰지
호박씨는 아랫목에 말려서 손자놈들 오면 까 주지.

참, 저 호박 같이만 살아서
호박처럼만 쓰였으면 좋겠네.

 

다시 호박

2년 전의 호박이란 내 시가 너무 쉬운 세상과의 화해든지 타협이 아니냐 누가 그러기에 다시 보니 그래 그랬구나 타협이랄 건 없고 그냥 화해하고 싶었지 언제나 백척간두 그 팽팽함을 견딜 수 없어서 너른 땅으로 내려와 버렸지 늙은 호박처럼 펑퍼짐하게 앉아 쉬고 싶었지 유유한 척 다 내놓고 싶었지
그렇긴 하지만 늙은 호박에 대한 나의 존경심만은 순수하다 늦가을 시든 풀밭에 떡 하니 버티고 앉은 호박을 보는 것은 언제나 나에게 하나의 경이다 저물 무렵 휘파람 불며 천천히 들녘을 걷다가 이제 더 허리 굽혀 들여다 볼 새싹도 예쁜 꽃도 없는 가을 들녘에서 허전한 눈은 먼 하늘만 향하다가 문득 풀밭 속에 파묻혀 있는 누런 호박을 만날 때 여기 또 저기 그 커다란 둥근 호박만큼이나 그득히 내 가슴은 차 오르지 온갖 싱싱하던 푸른 것들 다 시들어도 저런 호박처럼 버티고 익어갈 수 있다면 늙어갈 수 있다면 인생은 한 번 살아볼 만한 것 같다네

 

봄비와 새싹

밥도 못 먹고 허겁지겁 달려온 아침 보충 시간. 창밖엔 봄비가 내리는데 교실은 푸석푸석 생기가 없다. 복도를 순시하는 교장선생님은 침 튀기며 강의하고 초롱초롱 눈 빛내며 듣는 줄 알겠지만 아이들도 선생도 하품만 해댄다. 각성제처럼 쓰린 커피 한 잔 마셔가며 교과서를 펼치지만 어젯밤 꿈도 덜 깬 아침 보충 수업, 잎새 위에 봄비는 저리 싱그러운데.

"봄비는 가늘어 방울 맺지 못하나, 밤중에 작은 소리 들리고, 눈 녹은 물 남쪽 계곡에 넘쳐서, 뾰족뾰족 풀싹들 돋아나네." 오늘 아침 문학 공부는 교과서를 덮고 봄비 소리와 뾰족뾰족 새싹을 생각하며 시 낭송을 들어볼까. 어제 읽은 글 한 수 칠판에 적어 놓고 은근히 옆길로 유혹하니 아이들은 강아지처럼 좋아한다. 낭송 테잎의 시와 음악에 잠겨 빗방울처럼 맑아지는 아이들의 눈빛을 보며 희망을 말해야 할지, 절망을 말해야 할지. 격랑치던 열정과 고난의 세월은 가고 제대로 이룬 것 없이 바뀐 것도 없이 무작정 새 시대가 와서 모두들 새 감성과 새 논리를 말하는데. 그래서 우리의 학교는 희망적인가, 세상은 여전히 진보하고 있는가. 차라리 절망을 털어놓는 것이 솔직하지 않을까 상투적인 희망은 그만 말해야 하지 않을까.

보슬보슬 봄비 속에서 아이들은 님의 침묵을 읊고 있다.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만해의 슬픔에서는 어떻게 힘이 나왔을까. 그는 그만 가라앉고 싶지 않았을까. 깜깜 어둠 속으로. 그러나, 님의 부재 속에서 님의 존재를 보고 침묵에서 노래를 듣는 시인은 어둠에서도 햇빛 쪽으로 햇빛 쪽으로 싹을 뻗는 생명의 법칙을 아는 사람이지. 희망은 상투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다. 저 부드러운 봄비 속에서 뾰족뾰족 새싹들 자라고 이제 비 그치면 꽃그늘 아래로 아이들은 새처럼 재잘대며 노래하리라.
                                春雨細不滴 夜中微有聲 雪盡南溪漲 艸芽多少生 - 정몽주

 

못난 사과 

못나고 흠집 난 사과만 두 세 광주리 담아 놓고
그 사과만큼이나 못난 아낙네는 난전에 앉아 있다.
지나가던 못난 지게꾼은 잠시 머뭇거리다
주머니 속에서 꼬깃꼬깃한 천 원 짜리 한 장 꺼낸다.
파는 장사치도 팔리는 사과도 사는 손님도
모두 똑같이 못나서 실은 아무도 못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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