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노이즈
돈 드릴로 지음, 강미숙 옮김 / 창비 / 200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걸 소설이라고 쓴 건지, 난 또 왜 이 소설을 읽은 건지... 잘 모르겠다.

내가 싫어하는 책 중의 하나가, 무협지를 싫어하는데 무협지보다 더 싫어하는 책 중 하나가 바로 <현대 문명으 진단> 뭐, 이런 류의 책이다. 테크놀로지 시대, 전자 문명의 시대를 진단한다는 허접한 담화 말이다.

이 책이 딱 그런 책이었다. 제목과 두께, 표지만 보고는 <스릴러>라고 착각했더랬는데, 그래서 반신욕하면서 들고 들어갔었는데, 진짜 재미없었다. 잡음으로 가득한 소설 속에선 맛대가리도 없는 현대 문명이 또 한번 진단되고 있었다.

제목인 '화이트 노이즈'는 가청 주파수의 모든 소리가 동시에 나서 아무런 의미도 전달하지 못하는 전자음이라는 과학용어에서 빌려온 것이란다. 이 소설에선 압도하는 정보와 상품들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현대 미국의 상황과 죽음의 미망에 사로잡힌 주인공들의 상태에 대한 은유로서 그 의미를 확장하고 있다는 것이 역자의 설명이다.

20년 전의 미국 상태가 그랬다는 것이다. 9.11 테러 이후로 한층 심각해지지 않았을까 한다.

미국인들이 사는 것을 보면, 마지막에 등장하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꼬마의 자전거를 연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성 싶다.

해체될대로 해체된 가족의 단면,
첩보원, 킬러 뭐, 이런 직업들인 전 부인들,
애정을 담은 대화는 없고, 정보를 담은 대화들로 가득한 생까기의 식탁...

은행 카드의 비밀 번호나 각종 홈페이지 회원 가입시의 <아이디와 패스 워드> 같은 것들에 대한 주의 사항. 비밀 번호를 꼭 기억하십시오. 단, 적지도 말고, 생일과 관련된 비밀번호, 주민번호에 관련된 번호는 안된다고 해서 수십 개의 아이디와 비번을 가진 나로서도 저자의 이야기들은 낯선 것들만은 아니었다. 아마 20년 전의 한국은 전혀 그렇지 않았을 것이지만...

지은이는 죽음에 대해서 계속 생각한다.
"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왜 이렇게 오래, 이렇게 지속적으로 갖고 있었을까..."
그는 이렇게 답한다.
"그거야 분명하다. 억압하는 법을 모르니까. 우린 모두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 엄청난 사실을 억압하고 위장하고 숨기고 배제한다. 다만 이런 것을 더 잘 하는 사람이 있고, 못하는 사람도 있다."
좀 어설프다.

텔레비전과 인터넷의 현대 문명으로 도배된 방에서, 거울에 낱낱이 비춰진 자기 모습을 보면서 아내 배비트는 말한다. "난 내 얼굴이 싫어요." 그래서 미국은 성형 수술의 일번지다. 한국도 그에 못지 않지만...

텔레비전의 소음에선 하루 종일 음식을 볶아 대고, 미국식 폭발음이 울리고, 짱구는 못말릴 지경으로 사고를 저지르며, 연예인이란 이름의 장사꾼들은 성형된 미남 미녀들을 앞세워 쌩쑈를 하고 있다. 시청자들의 손은 리모콘으로 조금 더 자극적인 시청거리를 찾아 허무한 여행을 매 순간 하지만, 결국 선택하는 것은 과대 포장된 상업성 외엔 아무 것도 없다.

히틀러학이란 얄궂은 과목 교수인 주인공을 통해, 작가는 현대의 학문이 얼마나 얄팍한 상업성인지를 나타내는 듯하다. 그는 이 소설을 왜 썼을까?를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는 미국인들에게서 이걸 보았던 거다.
미국인들의 눈에서, 뭔가, 허기랄까, 제어할 수 없는 욕구를...

제어할 수 없는 욕망의 시대.
모든 것이 하얀 잡음에 포장되어 판단을 흐리게 하는 시대.
텔레비전 보는 법 조차도 가르쳐야 한다는 이 우매한 시대.

온 천지는 잡음과 소음 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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