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게 길을 묻다
이덕일 지음 / 이학사 / 200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상식적으로, 역사는 현재의 상황을 판단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착각하며 살아 같다.

그렇지만, 내 경험으론, 전혀 아니올시오다.
그 판단 기준은 단 하나.
역사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수업 시간의 상당수(주당 34시간의 수업 중 5시간 정도)를 할애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한국에서 역사 교육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닌 숫자의 암기에 불과하다.

숫자로는 결코 현재의 상황을 판단할 수도, 미래를 예측할 수도 없다.

딴나라당에서 지네들 당보에 왕의 남자와 대통령을 패러디한 풍자가 실렸단다.
딴나라당 당보답지 않게 신선한 해석이라 놀라웠다.
역사란 그렇게 현재의 판단에 도움을 줘야 한다.
그런데, 연산군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게 뭐가 있는가? 딴나라당 애들이 연산군 좀 아나?
그냥 폭군으로만 알고 있는 거 아냐?

어머니의 상실로 인한 분노.
그리고 연산군에 대한 모욕으로 가득한 연산군일기라는 신빙성 없는 사료에 근거해서 악취미 삼아 연산군을 저질 사극의 대상으로 삼았던 과거를 답습하고 있는 것 아닐까?
'왕의 남자'란 영화에선 물론 상상이지만, 연산군은 멋진 남자 아니었던가.

김정일에 대해서 아는 거 없으면서도 <기쁨조>같은 저질 삼류 언어로 우리는 그에 대해서 아는 체 하지 않는가 말이다.

이 책은 역사에 대한 시각 교정을 위한 이덕일씨의 생각들이 조금은 체계없이 적힌 글들이다.
전체적으로 클 틀이 없으며, 과거사와 현대사를 아울러, 한국사를 조명하고 있다.

일관성있게 저자가 비판하는 점은, 일제 강점기 식민사학의 맹아가 된 이병도에 대한 비판이다.

한국의 과거를 평화성과 아울러 강인성, 정체성... 이라고 한 식민 사관.
그래 한국은 제자리걸음인 정체성의 국가라는 것이다.
그 식민 사학이 지금의 국사 교과서에서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것이 주된 비판이다.
국사 교과서와 국어 교과서가 1종인 이런 독재국가는 전 세계에 별로 없을 것이다.
오이씨디 나라 중에서 아마 유일하지 않을까? 이런 닫힌 나라 말이다.

단종과 세조의 문제, 훈구파 대신들의 문제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룬다.
불쌍한 단종과 개혁적 세조, 썩어빠진 훈구파... 역사 책에서 그렇게 다루는데, 세조의 한계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드라마에서 인기가 많은 여러 이야기들에 대한 비판도 있고,
현대사에서 나라를 망쳐먹는 수법이 역사 속에 가득했던 것도 지적했다.

조선은 결코 부패로 가득한 나라는 아니었다.
틈만 나면, 부패를 소금으로 문질러 소독하려는 움직임들이 일어났지만,
그 썩은 부위를 덮어둔 것은 빛과 소금이 아닌, 축축한 땀내 배인 썩은 보자기였다.

고려의 권문 세족이 60-70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는 이야기 끝에, 한국 외환 위기를 예언했던 스티브 마빈이란 사람의 인터뷰는 인상적이다.

지금 모든 문제는 70명 정도의 지도층 인사 때문에 시작된 겁니다. 재벌 그룹 총수 50명, 잘못된 정책 결정을 내린 재경부 고위 관리 10명 정도, 한국은행 등 관계자 10명 등. 나머지 한국민들은 잘못이 없어요. 그동안 정부와 재벌은 고임금과 국제 경쟁력 상실, 과소비만 얘기해 왔는데 한마디로 웃기는 얘기예요.

이렇게 과거의 역사는 현재의 잘못을 교정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덕일씨의 국사 교육 상실, 부재에 대한 개탄에 대해 일부 동감하지만,
중,고, 대 시절에 국사를 배웠던 사람으로서 한국사 교과서를 제발 확 뜯어 고쳤으면 한다.
상,하권의 4/5에 해당하는 5000-100년 전 이야기는 간략하게 하고,
나머지 100년의 현대사, 그것도 사건, 이름, 연도순으로 하지 말고,
주제를 가진 역사 교육이 필요한 것 아닐까?

국수주의적 용어인 국사, 국어도 세계 속에서의 한국사, 한국어로 고치고, 세계인에 걸맞게, 한국 역사에서도 멋진 입법, 사법, 행정적 제도들이 가득했음을 가르치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일까?

역사라면 지긋지긋한 암기 과목으로 만들 것이 아니라, 역사 과목만큼은 그야말로 주관식 시험을 치러야 하지 않을까? 무슨 사건이 일어났던가 보다는 그 사건은 내게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도록 말이다.

p.s. 150쪽의 '십팔자 도참'의 한자가 틀린 것이 하나 있다. 十八子 도참이 되어야 이씨가 왕족이 될 것을 十八字 도참이 되어 의미를 막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