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만 보는 바보 진경문고 6
안소영 지음 / 보림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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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 [사소절]

 

해는 묘시에 떠서 유시에 진다.

그 사이에 책을 읽지 않고 마음을 거두지 않으며,

스승과 벗을 마주하지도 않고, 하는 일도 없이 빈둥빈둥 이리저리 어슬렁거리며 시끄럽게 떠들고 망녕된 생각이나 하며,

비스듬히 기대 앉거나 벌렁 드러눕고, 바둑두고 장기 두거나 미친 놈처럼 술에 취하고,

한낮에 잠이나 퍼잔다면, 여유럽게 스스로 즐거워한다 할 만하다.

밤에 자다가 깨어 어제 내가 한 일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람의 일을 갖추지 못함이 마치 몸에 마비가 와 거동이 불편한 반신불수나 다름이 없다.

반나절을 허랑하게 보내는 것은 비유하자면 상란을 만나 결혼할 시기를 놓치는 것이나,

홍수나 가뭄으로 씨 뿌리고 거둘 때가 어긋나는 것과 비슷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상란과 홍수나 가뭄이야 어찌 내 스스로 한 것이겠는가?

 

정민 선생의 '죽비 소리'라는 책에서 내가 스크랩해 두었던 글이다.

이덕무의 <하루>라는 글. 마치 수도자처럼 서늘한 정신이 느껴진다.

 

책만 보는 바보, 그가 이덕무라는데 나는 너무 안심이 된다.

조선 후기, 그 역동의 시기에 어찌할 줄 모르고 동료들과 토론으로 밤을 새우던 그 분들의 형상화가 정겹기 그지없다.

 

사람을 홀리려면, 세 가지를 하라고 했다.

첫째, 조명을 활용하고,

둘째, 음악을 활용하고,

셋째, 화장을 하라고...

간서치를 통해서 본 책읽는 광경은 사람을 홀리기에 충분한 조건을 가졌다.

창호지를 비쳐 들어온 은은한 조명과,

간결한 그 음악적인 글맛과,

사나이들의 굵직굵직한 만남의 선은 화장발 저리가라고 할 정도로 시원시원하다.

 

초등 고학년은 되어야 읽을 수 있을 테지만,(6학년 1학기가 되어야 국사를 배우니깐)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읽거나 성인이 읽어도 참 멋진 책이리라 생각한다.

책에 대한 취향도 개인차가 크지만,

이 책처럼 어렵지 않고, 은근한 <한국의 멋>이 있고,

시대에 따른 고뇌까지 품은 멋진 작품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방학을 이용해 동화를 사주고 싶은 사람이나,

책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선물을 주고 싶은 사람이 산다면 후회없을 책이다.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만나는 또 하나의 <덤>은 그림같지 않은 그림이다.

처음엔 그림이라고 보지 못하고 지나간 부분에,

매혹적인 붓선으로 그려낸 멋진 그림들이 들어 있음을 깨닫고는,

그림만 다시 훑어보기도 했을 정도로 그림에 매혹될 만한 책이다.

 

이 책을 보고 싶어, 도서관에서 빌릴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산 것에 대해서 정말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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