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칠 수 있는 용기
파커 J. 파머 지음, 이종인 옮김 / 한문화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방학을 맞아 전 직원이 여행을 떠났다.
요즘은 예전에 비해, 버스 안이 조용해서 좋다.
전엔 버스 안에서 음주와 노래방 모드가 혼재해서 관광버스는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였던 데 비하면...

여간해서 잠이 오지 않아서 비상용 책을 펴 들었다.
표지를 보고, 오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대한 용기 같은 걸 떠올렸던 것 같은데,
책을 펴들고는 공감하는 대목에 진도가 빨라졌다.

이 책을 중간 정도 읽고는 눈이 피곤해서 좀 쉬었는데,
그 이후는 별로 새로운 것이 없었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것은 몇 가지 안 되지만, 교직에 몸 담은지 이십 년에서 몇 년 빠지는 나로선,
동감할 부분이 정말 많았다.

내가 초보 교사이던 시절,
아이들이 떠들고, 말을 안 듣고,
수업을 잘 듣는 것 같지 않고,
내 말은 아이들에게 감동적으로 날아가지 않을 때,
교실에 들어가기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에 비유됨이 적절함에 동감했다.

그런데, 십년도 훨씬 넘은 지금,
내가 아이들을 조용히 시킬 줄 아는 기술은 익혔지만,
아이들에게 내 수업이 정확히 먹혀들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여전하단 생각이다.

아이들이 나에게서 공포를 느끼게 되었고,
나도 아이, 수업, 우리의 관계, 그리고 나 같은 것들에게 여전히 공포를 느끼고 있다.
변한 것이라면, 아이들은 나를 멀게 생각한다는 것.
내가 초보 시절, 경력 많은 선생님들의 앞에선 고분고분하던 그 아이들을 떠올리면, 좀 부끄럽다.

그래서 그랬던가 보다.
초보때 아이들을 가장 잘 가르칠 수 있다고...
지금 십여 년 전보담은 국어란 교과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수업 기술도 훨씬 늘었다고 생각하지만,
테크닉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은 명백한 한계를 지닌다는 사실을...

내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했고,
그래서 아이들 앞에서 두려웠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과 잘 지낼 수 있었던 그 아름답던 시절을 추억하게 해 준 책이다.

가르침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맞다.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늘 자괴감을 갖게 되는데,
문제는 내 앞에 선 그 무능력한 아이들이 아니라, 그 아이들 앞에서 <무기력>을 느끼는 <나 자신>이다.

이제 다시 방학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교사들이 방학이면 완전히 학교에서 해방된다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아는 사람들은 안다.
방학이 없다면 교사들의 퇴직 신청이 얼마나 많이 늘어날 것인지를...
방학을 통해서 녹이 낀 자신을 닦아 내려고 연수원 강의실은 얼마나 후끈 달아 오르는지를...
집에서만 보낸 방학보다 연수원에서 보낸 방학이 훨씬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음을...

다음 주부터 2주간 <중등학교 전문 상담 과정>을 수강하게 되었다.
1년간 실업계 아이들의 무식함을 탓했던 나 자신을 닦는 기회가 되도록 만들 생각이다.
그리고 남은 방학 동안은 교지를 만들러 다녀야 한다.

별로 보는 사람도 없는 책을 만드는 데, 힘을 쏟기가 귀찮긴 하지만,
내 이름이 뒤에 조그맣게 찍히는 책에, 맞춤법 오자 투성이인 책을 만들 순 없는 노릇이다.
교지는 아주 얇게 만들 계획이다.
예산은 많지만, 많이 남길 계획이다. 돈이 아까워서.
내 돈은 아니지만, 그것이 모두 혈세가 아닌가 말이다.
솔직히 교지 나눠주고 나면, 버리는 것이 절반 이상이다.
조선일보 욕할 것이 아니다. 내년엔 우리 학교에서 먼저 교지 없애기를 해 보고, 결과가 좋으면, 널리 힘을 모아볼까 생각 중이다.
고등학교 하나에서 드는 돈이 500-1000만원이다. 부산만 해도 고등학교가 1300여개니깐 연간 수십 억의 돈이 교지란 책으로 낭비된단 생각을 하면, 아깝기 그지없다.

이 책을 <지친 교사>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방학을 통해, 우리 교사가 얻어야 할 것은,
해외 여행을 통한 견문도, 많은 공부를 통한 지식도 아닌,
또 다음 학기를 버텨낼 <용기>이고,
나 자신 가치로운 인간임을 깨닫게 되는 <계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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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5-12-31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가지고 있어요. 이번 방학 때 꼭 읽을게요.
저도 가르칠 용기가 필요한 시점 같군요^^

글샘 2006-01-03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읽어 보세요. 다 읽으실 필욘 없을 것 같고, 앞의 두세 챕터 정도...
거짓의 사람들처럼 뒷부분은 재미없는 곳도 있더라구요.

글샘 2006-06-16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9쪽
나는 나 자신의 성품에 적합한 교수방법, 나 자신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방법을 찾아 나섰다. 그때 스승의 힘은 교수방법과 인품이 일치할 때 가장 강력하게 발휘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교사로서의 내 성품을 알아내어 그것을 교수방법과 일치시키려는 길고 긴 과정에 들어섰다.

59쪽
Jane Tompkins'고통받는 사람들의 교육학'에서..
자신의 강박증에 대해서 고백한다. 자신이 학생들이 알아야 하고 알고 싶어하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음 세가지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첫째, 학생들에게 내가 얼마나 똑똑한 교사인지를 보여주는 것,
둘째, 학생들에게 내가 얼마나 지식이 많은지는 보여 주는 것,
세째, 학생들에게 내가 얼마나 수업준비를 충실히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 나는 이처럼 교실에서 세가지 연기를 해 왔는데, 그 진정한 목적은 .. 학생들이 나를 훌륭하게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정체성과 성실성을 추구할 때 내가 발견하는 것이 언제나 자랑스럽고 환히 빛나는 것만은 아니다. 나의 자아의식을 형성한 만남들을기억하여 찾아 낸 정신적 발견은 때때로 당황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생생한 것이기도 하다. 그 당황의 대가에 상관없이 나는 내 안에서 작용하는 여러가지 힘들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그러한 힘들이 나의 교직활동을 부지불식간에 파괴하도록 놔두어서는 안된다. 이렇게 해 나가는 과정에서 나는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되고 더 훌륭한교사가 된다.

플로리다 맥스웰은 80대 중반에..
" 있는 그대로의 당신 자신이 되고 싶으면 과거의 인생사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됩니다. 과거에 당신이 존재했던 방식과 당신이 했던 일을 진정으로 당신의 것으로 인정한다면 당신의 현실 인식은 한결 치열해 질 것입니다."

60쪽
의무감에서 어떤 직업을 선택하게 되면 거기에는 긴장과 폭력이 따르게 된다.. Frederic Buechner프레데릭 뷔흐너 의 직업에 대한 정의.." 직업은 당신의 진정한 기쁨과 세상의 깊은 허기가 서로 만나는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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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쌤이 읽으시다가 메신저로 날려 주신 좋은 구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