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없는 나라 - 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이광재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년 4월,

이것은 나라도 아니다...

이런 생각에 잠겨 비통했다.

 

그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이 나라의 유구한 권력자들의 전통에서 유래한 것임을, 다시 확인하게 하는 소설이다.

 

구한말,

민씨 일파는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외세와의 야합을 꾀한다.

거기에는 개혁(경장)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개화파도 합세한다.

 

민씨당을 쳐내고 여기 계신 분들이 조정을 장악하는 게

우리가 바라는 일입니다.

일본은 좋은  우방을 얻게 되니 득이요,

조선은 개혁을 단행하게 되니 일거양득이지요.(189)

 

서구적 근대가 반드시 우월하다고 볼 수도 없지만,

그나마 조선이 접한 건 일본에 의해 굴절된 근대의 변종이 아닌가.

따라서 그를 추종하던 세력과 기득권 세력이 친일파가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바로 그들과 그 후손들이 지금 우리의 '갑'이다.

그 '갑'들이 한국사를 국정교과서로 만들겠다고 말하는 세상이다.

역시 그곳이 첫 단추다.(작가의 말, 353)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맥락은 거기서 거기다.

 

이 소설은 재미가 없다.

피끓는 시절의 사람들을 잘 형상화했으면,

읽으면서 피가 끓거나, 사랑 이야기에 아련함도 느낄 수 있는 게 소설인데,

등장 인물은 많으나, 그들이 유기적으로 엮이는 사건도,

또렷이 기억에남는 인물의 형상화도 부족하다.

부분부분 밑줄을 긋는 대목은,

공감은 가지만, 소설에서 읽을 만한 재미는 아니다.

 

꿈을 꾸는 자 앞에서 작은 안락함이란 실로 누더기가 아닌가.(67)

 

아니도, 외롭고 고단하구나.(172)

 

새 세상이 올 것이라고 꿈꾸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새 세상이 오긴 하였으나,

그 세상은 더 넓은 계급사회의 확대이고,

더 험한 전쟁의 심화일 뿐이었다.

꿈을 꾸던자에게 안락함은 누더기로 치부할 수 있는 가치였으나,

그 외롭고 고단한 현실은 보상받을 수 없다.

 

 

백성은 날마다 나라가 망해야 한다고 외친다는데

몽매한 소리가 아니라 그건 곧 좌절과 분노였다.(151)

 

이것은 나라가 아니다! 나라는 없다!

궁을 나가자, 지킬 임금도 없다!

평양으로 가서 왜놈과 싸우자!

왜국을 싸고 돌면 너희도 우리의 적이다!(195)

 

분노하고 돌을 들 때,

가진자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하여 학살을 꿈꾼다.

 

구제 병기와 신식 무기의 싸움은 전쟁이 아니라 학살입니다.(246)

 

꿈꾼자,

다시 어두운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받아먹지 못한 환곡을 갚고, 노상 부역에다 군포는 군포대로 내는 세상으로 다시 가겠느냐?

양반의 족보를 만드는 데 베를 바치고

수령들 처첩까지 수발을 들면서 철마다 끌려가 곤장을 맞을 테냐?

이제는 그렇게 못 살지요.

나도 그렇게 못 한다. 우리는 이미 다른 세상을 살았는데 어찌 돌아간단 말이냐.

목숨은 소중하지만 한 번은 죽는 법이다.(301)

 

독재시대로 돌아가려는 발호가 날마다 전쟁중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못 산다.

 

 

선생님, 저 재를 넘으면 무엇이 있습니까요?

몰라서 묻는 게냐? 우리는 이미 재를 넘었느니라. 게서 보고 겪은 모든 것이 재 너머에 있던 것들이다.

그럼 이제 끝난 것입니까?

아니다, 재는 또 있다.

 

재를 넘는다고 끝은 아니다.

다시 재가 온다.

삶은 그런 것이다.

그렇지만, 또 재를 넘기 위해 힘을 보태야 할 때가 온다.

 

이 소설은 흥겹게 읽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였으나,

힘들었다.

작가의 목소리에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소설로서의 재미는 적었다는 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