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서재 속 고전 - 나를 견디게 해준 책들
서경식 지음, 한승동 옮김 / 나무연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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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견디게 해준 책들>

 

이 책의 부제다.

 

서경식은 재일조선인이라는 디아스포라의 삶을 주제로 살아가며 쓴다.

두 형은 서준식, 서승... 박정희의 '일본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을 품고 갔고,

어머니도 그동안 암에 걸려 돌아가셨다 한다.

태어난 곳도, 부모의 나라도 모두 거부하는 떠돌이 디아스포라...

그를 견디게 해준 책들은... 여느 인물들이 열거하는 공자, 맹자랑은 전혀 다르다.

 

그가 왜 그렇게 미술이나 음악에 매달리는지도 이 책을 읽으며 이해가 되었다.

 

서양에서는 로고스만으로 삶의 구석구석을 설명할 수 있다는 전제가 있었어요.

그런데 아우슈비츠 이후 로고스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삶의 여백들이 조명받았지요.

이런 여백들을 미토스적인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제가 미술이나 음악에 관심을 갖는 건 이런 여백들이 예술을 통해 표현되기 때문일 겁니다.

미토스에 대한 조명은 서구적 합리성에 대한 정면 대결이나 부정이라기보다는

로고스적인 이해의 한계를 지적하려는 것입니다.

에드워드 사이드 역시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고요.(230)

 

팔레스타인의 디아스포라 사이드 역시 피아니스트이면서도,

문제의식을 밝히는 데 일생을 바친 사람이다.

 

선생님의 고전 목록이

동서양을 망라한 휴머니즘 전통의 자장 안에 있는 고전의 외양을 디아스포라의 입장에서 확장해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반고전주의가 아니라 교양의 확대로 봐야겠지요.

그런 점에서 대단히 도전적인 시도로 읽혔고요.

어떻게 하면 제 고전 목록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남기는 목록이었습니다.(217)

 

고전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마치 우리 대학 시절 돌아갔던 커리큘럼이

'철학에세이'나 '해방전후사의 인식'에서 '이성과 우상, 전환시대의 논리' 같은 책을 넘어,

'자본주의의 구조와 발전' 같은 책으로 짜여져 있던 것처럼...

 

흔들리는 지줏대인 마음을 더 '북돋우기' 위하여 호미로 긁갱이질을 하는 일이

자못 부질없어 보일지도 모르는 고전 읽기일지 모르겠다.

 

가토 슈이치는 전쟁 말기의 어느 날,

벗인 시라이 겐자부로가 다른 학우로부터 '자네, 그래도 일본인인가'하는 힐난을 받았다는 일화를 소개한다.

시라이는 차분하게 '아니, 먼저 인간이야.'라고 대답했다고...(139)

 

지금 일본은 미국의 비호하에 군사국가로 태어났다.

이 책이 쓰여지던 시점에는 위태위태했지만,

지난 9월 19일 새벽 2시경, 법안이 통과되면서 '평화'를 지켜야했던 헌법은 무너졌다.

그것은 미국의 의견이지, 일본을 욕하는 건 무의미하다.

전쟁 시기에도 '일본인'이기 이전에 '인간'이고자 했던 정신, 그것이 고전으로부터 북돋워야 할 힘이다.

 

최고의 예술에 어울리는 최고의 말

단지 지적이라고만 얘기할 수 없는 그 말을 통해

나는 나의 사회적 견해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나의 미적 감각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갖게 됐다.(119)

 

고전은 고정관념이나 우상에 가까운 권력을 뒤흔든다.

그래서 자신감을 돕는다.

 

사이드는 전문주의에 저항하기 위해 아마추어리즘에 입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마추어리즘이란 이익이나 이해, 또는 편협한 전문적 관점에 속박되지 않고

걱정이나 애착이 동기가 돼 활동하는 것이다.

아마추어는 사회 속에서 사고하고 걱정하는 인간을 가리킨다.(80)

 

핵발전소를 거부하는 것,

니들이 뭘 알아~ 이런 전문주의에 맞서 싸우는 아마추어리즘에 대하여 용기를 준다.

알아야 싸우는 것은 아니다.

세계화의 전문가가 만드는 신자유주의는 내 지갑에서

후손에게 물려줄 지폐를 탈탈 털어갈 것은 빼앗기지 않아도 다 안다.

 

나도 젊은 시절 루쉰의 어두운 말에서 절망과 같은 모습을 한 '희망'을 발견한 사람 중 하나(56)

 

백 년 전의 루쉰을 읽는 의미도 그러하다.

전문주의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하는 일에는 이미 역사가 실패했지만,

아마추어리즘의 용기는 무한하다.

고전의 힘이 그 근원이고, 북돋우는 지원자다.

 

오웰이 가난한 파리의 밑바닥 생활을 했던 이유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그 깊숙한 곳까지 알고 싶다는 불타는 욕구 때문이다.

굶주림이나 노예노동의 고통조차 넘어서는 그 욕구가 그를 르포 문학인으로 만들었다.(46)

 

물을 마시고 우유를 만들 수도, 독을 만들 수도 있다고 하듯,

지식인을 떠받치는 고전 역시,

희망을 줄 수도 절망의 길로 인도할 수도 있다.

 

서경식은 흔들리는 자침처럼,

그렇게 고전을 통해 진리를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다.

 

이렇게 흔들리며 가리키는 사람이 있어,

인류는 조금이라도 덜 악마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비록 점점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그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추려는 게 고전의 헛된 힘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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