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계, 얌순이들의 보고서 청소년 리포트 4
안재희 지음 / 우리교육 / 2003년 1월
평점 :
절판


내가 가르친 아이 중에 과학고에 다니다 일반계로 전학온 아이가 있다.
그 아이가 미용실엘 갔는데 어느 학교 다니†v서 '부산과학고' 다닌다고 했더니
'주간이냐, 야간이냐?'고 물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를 했다.

000 컴퓨터 과학고, 00 디지털 고교, && 정보 과학고... 이런 학교들이 숱하게 있다 보니, 그 미용실 아가씨는 부산과학고를 그런 실업계 고교로 혼동했던 모양이다.

상고, 공고들이 더이상 존재 의미를 잃어 가면서, 허울만 '과학, 정보'로 바뀌었다.
교사도 그대로고, 교육 과정도 그대로인데, 학교 이름이나 학과 이름만 희한하게 바뀌었다.
이건 명백한 눈속임이고, 과대 과장 광고임에 분명하다.

태풍의 눈에 들면, 잠잠한 지역이 있단다.
실업계 고교를 보면, 그런 느낌이 든다. 교육의 질은 떨어지지만, 분명 교육이 이뤄져야 하는 곳임에도 교육은 없다.

이 책의 가치는 실업계 고교의 문제를 아이들의 시각으로 분석하려 했다는 점에 있다.
대부분의 이런 책을 낼 수준에 있는 사람들은, 실업계를 알지 못한다.
그것도 30년 전의 산업 사회에 맞춰서 생긴 실업계 고교가,
그 투자 효과를 다 얻고 이젠 시들해져 버린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재정적 투자를 요구하는 공룡처럼 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할 때가 많다.

일반계 고등학교엔 시설이랄 것이 별로 없다.
그저 교실에 형광등이나 부지런히 갈아 주고, 여름에 에어컨, 겨울에 히터나 잘 때주면 그만이다.

그러나, 실업계 고교엔 시설이 많다.
공고의 경우에는 학과 별로 실습 동이 있고, 수천만원대 기기들이 수두룩하다.
상고(요즘엔 정보고로 많이 탈바꿈했지만)의 경우에는 고액의 기기들은 적지만, 최신 기종의 컴퓨터가 필수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실업계 고교는 존재 이유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 '진실'이다.
이 책은 그것을 적나라하게 집어내고 있다.
고교의 교육과정과 교사의 구성이 학생들과 사회의 요구에 전혀 부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룬 얌순이들이란 용어는 연구를 위해 저자가 만든 용어다.
공부를 잘 하면서 얌전하게 생활하는데, 취업을 준비하지 않고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아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실업계에 들어오면 열패감에 젖어든다는 것을 모르는 학부모나 중학생은 거의 없다.
그래서 일반계 커트라인 안에 드는 아이들은 수백 명 중에서 몇 되지 않는다.
일단의 패배감에 젖어 들어오는 것이다.
그 안에서도 물론 '여기서 잘 해서 대학을 가야지'하는 아이들도 생길 수 있다.

그렇지만, 학교 전체가 도와주지 않는다.
교육과정 자체가 실과 위주로 편성되어 있고,
교사 요인에선, 실과 교사는 70년대 풍 그대로 강압적인 실세가 많다. 연령대는 거진 50대 이후다. 실과 교사는 이동이 별로 없거나 이동하더라도 서로 아주 잘 알아서 사립학교나 다름없는 분위기다. 70년대처럼 생활검열을 하고 소지품 검사를 한다.
일반 교과에는 잠깐 머물다 가는 뜨내기 의식을 가진 교사들이 많다. 어쩔 수 없이 근무하긴 하지만, 의욕적으로 뭘 해볼 염은 낼 수 없다. 그저 몸이나 건강하게 돌보고, 월급이나 타먹으면 된다는 식이다. 신규 여교사가 많다는 것도 하나의 한계가 될 수 있다.
학생 요인이 제일 심하다. 학습 장애 수준의 학생들이 수두룩하고, 파괴된 가정에서 사랑없이 자란 아이들이 너무도 많다. 교사에 대해서는 무조건 부정적인 아이들도 많다.

물론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도 얌전한 아이들이 있다. 공부를 열심히 하려는 아이들도 있다.
그리고 일반계 아이들보다 이 아이들이 진학률도 더 높다. 80%를 상회한다.

실업계 고교는 더이상 '실업 교육'을 원하지 않는 중간 단계의 교육기관이 된 지 오래다.

이 책이 갖는 한계는, 실업 교육의 대안 내지는 개선 방향의 제시에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형식 자체가 '보고서'로 명확하게 한계를 긋고 있고,
그 중에서도 특히 실업계 학교에도 적응하고, 사회에도 적응하려는 '얌순이'들에게 초점을 맞추기는 했지만,
현재의 실업 교육의 <진실>에 다가가기에는 한계가 너무도 명확하다.

지각, 조퇴, 결석 등으로 '개기거나',
수업 시간에 무관심하고 엎어져 자거나 수업을 방해하는 모습을 띠기도 하고,
쉬는 시간에 흡연, 절도, 폭행 등으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며,
나아가서는 외부에서 음주, 절도, 폭행, 패싸움, 원조교제, 임신 등의 사고를 저지르기도 한다.

이 아이들을 감싸안을 수준이 못되면서도,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아이들을 고스란히 받아 대책없이 내굴리는 교육의 무풍지대가 한국의 실업계 교육이다.

내일까지 중학교 3학년들의 원서 접수가 실시되고 있다.
이미 거의 접수를 마쳐 가는데, 78% 정도에서 마무리 될 듯 하단다.
이 아이들이 가지는 행동 특성에 맞도록 학교를 리모델링하기엔 너무도 공룡처럼 거대하다.

한국은 이미 가고 있는 기차는 멈출 수 없다는 '무대뽀 정신'으로 무장한 나라 아니던가.
세계적 쪽팔림을 감수하고 있는 <새만금>이 그렇고,
이미 실패임이 실시 전부터 예고된 <제 7차 교육과정>이 그렇고,
돈만 퍼붓고 교육은 이뤄지지 못하는 <실업계 교육>이 그렇다.

미래가 없는 학교에서 현재의 아이들과 부대끼는 하루하루는 날마다 힘들고, 조금은 서글프고, 매일 어깨가 늘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