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연필 - 시인의 사물감성사전 시인의 감성사전
권혁웅 지음, 변웅필 그림 / 난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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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보고 듣는 일은,

생각을 부른다.

생각은 여러 가지가 대뇌에서 연합한다.

이른바 연합령.

 

사랑해요란 고백은 실은

당신이 날 사랑하게 만들었어요. You made me love you 란 고백의 줄임말이다.

나는 인형이 되면서 내 사랑의 대상을 인형술사로 만들지.

나는 어쩔 수 없이 당신을 사랑하지.(442)

 

이상한 나라에서 앨리스가

길에는 아무도 안 보여요. I see nobody on the road. 라고 말하자

여왕은 탄식했다.

나는 왜 이런 눈을 갖지 못했을까.

저 멀리 있는 '노바디' 를 볼 수 있는 눈이라니.

(328)

 

그래서 원더걸스도 노래하는 건가.

난 노바디, 노바디 씨를 원해. 하지만 너는 아니야.

I want nobody, nobody, but you.(329)

 

시인은 사물을 보면서도 감성 사전을 쓴다.

자신만이 희한하게 연합한 생각들을 기록해 둔다.

그런 노트를 훔쳐보는 일은 흥미롭다.

 

헤겔의 마지막 말은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 단 하나 있는데, 그도 나를 이해하지는 못했다.' 였다고 한다.

그 마지막 사람이란 바로 자기 자신.(324)

 

그래.

이해와 이해하지 못함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간극이 있는 것 같지만,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관계이기도 하다.

 

메르카토르 도법의 정체

실제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내게 먼, 어떤 이들은 그렇게 커 보이는 법이죠.

타는 마음이 만들어 낸 형상이에요.

메르카토르, 오랜 짝사랑에 빠졌나봐요.(284)

 

목성의 위성인 가니메데와 칼리스토의 표면은 달처럼 울퉁불퉁하고 늙었다.

충돌 자국이 그대로 남아서다.

다른 위성인 이오와 유로파는 매끈하고 젊었다.

활화산이 표면을 거듭 포장하기 때문이다.

청춘이 빛나는 것도 그런 뜨거움 때문이겠지.

모래 위에 쓴 글씨를 바람과 파도가 거듭 지우듯,

용암으로 덮고 다시 덮는 기록이야.

늘 새롭게 시작하는 기록이야.(256)

 

탱고는 아르헨의 생선공장 노동자들이 모여 만든 춤.

아프리카의 노예 음악, 쿠바의 춤곡, 아르헨 목동의 연가를 합쳐.

처음엔 천한 이들의 더럽고 음탕한 곡이라 손가락질 받았지.

그러나 곧 세계를 제패.

탱고는 '가까이 다가서다, 만지다'란 뜻에서 나왔대.

토막난 생선 신세였던 노동자들이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삶의 근원에 끌려가 만든 노래.

음악을, 서로를, 삶을 어루만지는 노래.(257)

 

음악에 대한 이야기들이나 이런 것들,

어디서나 흔히 들을 수 있지만,

또 흔히 흘려버리게 십상인데, 시인은 그것을 잡아둔다.

그것이 시를 어루만진다.

 

치아바타는 이탈리아 한 제빵사가 실수로 물을 너무 많이 넣었다가 발명한 빵.

그러니까, 물먹은 빵.

속에 구멍이 숭숭 뚤린 것도 상한 속 탓.

치아바타란 슬리퍼란 뜻이다. 이 빵, 처음부터 밟힌 거다.(35)

빵을 구울 때 물을 뿌려 겉을 딱딱하게 만든 빵이 바게트다.

빵의 세계에도 찬물을 끼얹는 행동이 있고, 딱딱하게 굳는 마음이 있는 거다.(34)

 

음식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시인의 연합령 역시 무궁무진할 것.

 

여기저기서 만나는 말들을 잘 잡아두는 일이 시작이다.

 

 

지퍼가 고속도로 같다면 단추는 골목길에 어울린다.

지퍼는 단번에, 거침없이, 열어젖힌다.

반면 단추는 좌삼삼 우삼삼... 기웃거린다.

망설이다가 설레다가 겁을 내다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는 첫사랑 같다.

안타까운 건,

단추의 사랑에는 그 다음이 있다는 것.

두번째, 세번째... 사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단추와의 첫사랑, 24)

 

그 사소한 단추 하나에도

마음을 싣는 시인의 마음...

 

사물에서 감성을 얻는 사전.

굳어지는 머리를 말랑거리게 해줄 만한 책이다.

 

 

 

고칠 곳...

 

135. 북두칠성 혹은 작은곰자리가 국자 모양.  손잡이 끝에 놓인 별이 북극성... 틀렸다. 국자의 두 별 다섯 배 지점에 있는 별이 북극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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