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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왕자, 사도 - 소통은 성군을 낳고, 불통은 역적을 낳는다
설민석 지음 / 휴먼큐브 / 2015년 9월
평점 :
어렵고 딱딱하게 여기는 한국사를
대중에게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기 위해...
이런 이력으로 시작하는 의도라면 이 책은 제법 성공이다.
여느 역사서가 '노론, 소론'이라든지,
수많은 인물들이 종횡으로 깔려있어
도통 이해를 위한 건지 몰이해를 위한 건지 모르게 생겨먹었는데,
이 책은 드라마틱하게 쓰여있으면서도,
내용도 아주 간략하고(너무 간략한 것이 아쉽다. ㅋ 12,000원짜린데, 자간도 넓고... 딱 반값이면 좋겠구만.)
명쾌하게 숙종-영조-사도-정조의 가계도가 그려지게 설명한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핵심이 없다.
왜 사도세자는 죽음에 이르렀는가.
나도 그 영화를 보았지만,
그가 실록에 나온대로, 미쳐서 영조 침전에 칼을 들고 간 일 때문에 죽였다...
는 것이 이 책의 증언이다.
문근영은 그 영화에서 핵심이어야 할 인물이었다.
그 아버지와 함께.
그런데, 그 주연들이 문 밖에서 그저 객관적 전달자인 것처럼 그려져서
나는 다시 '이덕일의 사도세자'를 찾아 읽었다.
머리말만 읽고도 속이 시원했다.
<알라딘 책 소개> 사도세자의 고백, 이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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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이상자가 되어 기행을 일삼다가,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었다는 사도세자. 그러나 사도세자는 미치지 않았으며, 당대의 집권 여당이던 노론이 소론 지지자이던 사도세자의 즉위를 두려워해 그에게 '반란음모죄' 를 뒤집어 씌워 제거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저자는 이러한 주장을 사료와 고증에 의해 하나하나 증명해 나가는데, 어려운 학술서적의 문체가 아니라 마치 르포 기사를 쓰듯이 생동감 있게 기술해 나가고 있다. 간혹 논리의 비약이 아닌가 싶은 대목이 눈에 띄어 저자의 '추측' 에 의문을 품어보지만, 글 전체의 구성이 탄탄해 결국 저자의 논리에 빨려들어가고 만다.
이 책은 피와 음모로 점철된 조선 왕조사의 어두운 측면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오늘의 당파는 말과 돈으로 싸울지언정 칼로 싸우지는 않지만, 당시의 당파싸움은 승패에 따라 자신의 목숨은 물론 일가 식솔들의 목숨까지 왔다갔다 하는 진검 승부였다.
노론의 지지를 업고 등극한 영조는 당파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 소론을 포용하는 탕평책을 쓰지만, 탕평책의 수혜자라 할 소론의 강경파들이 영조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대자보 사건`을 일으킴으로써 소론 온건파들마저 한 목에 목숨을 잃거나 귀양을 가고 노론의 세상이 온다.
소론에 동정적이었던 세자는 노론의 '소론 사냥'에 반대했고 노론의 눈 밖에 났다. 노론은 세자를 압박했고 세자는 노론에 대항하기 위해 더욱 더 소론과 가까워졌다. 결국 세자 제거의 총대를 멘 것은 당대의 노론 핵심이었던 세자의 장인과 처외삼촌이었다.
사도세자가 죽은 후 세자비였던 혜경궁 홍씨마저 아버지를 변명하고 남편을 정신병자로 기술한 <한중록>을 남겼다. 정치적 반대파인 사위나 남편이 왕이 되는 것보다는 미리 제거하여 후환을 없애고, 그러한 사실을 꼭꼭 덮어두는 것이 가문의 백년대계를 위함이라는 비정한 결단이 있었던 것일까. 독자의 입장에선 섣불리 예단할 일이 아니겠으나, 저자의 시각은 바로 그러하다.
저자 이덕일은 역사서를 대중적으로 쓰는 데 발군의 역량을 보이는 몇 안 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대중적 역사서를 쓰는 다른 작가들이 대부분 비전공자 출신인데 비해, 이덕일은 전문 역사학도 출신으로서 필력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거의 독보적이다.
펼친 부분 접기 ▲
소통은 성군을 낳고,
불통은 역적을 낳는다...는 말이 이 책의 표지에 적혀 있다.
불통이라는 개인의 가정사가 사도의 본질이라고 본다면, 아니올씨다이다.
지금의 야당도 아닌 야당의 개판 사정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파당의 문제임을...
이렇게 슬픈 역사는 하필이면, 프랙탈 구조처럼 반복되는 것인지... 서글픔이 밀려든다.
'사도'를 보고 슬펐던 이유를 공부하고 나서야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