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지의 시 - 2014-2015 이성복 시론집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를 쓰는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자기가 쓴 원고지를

다음날 아침에 읽어보고 북북 찢고 구겨 던질까?

 

얼마 전 신문에서,

안나푸르나 등반에서 조난당한 젊은 대원의 일기를 보았어요.

입이 벌어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남벽 아래서

긴 호흡 안 번 내쉬고,

우리는 없는 길을 가야한다.

길은 오로지 우리 몸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밀고 나가야 한다.

어떤 행운도 어떤 요행도 없고,

위로도 아래로도 나있지 않은 길을 살아서 돌아와야 한다.(36)

 

글쓰기도 그렇고, 삶 역시 그렇다.

길은 온몸으로 살아가는 것 뿐.

 

하느님,

제가 할 수 없는 일이라면 받아들일 믿음을 주시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밀고 나갈 용기를 주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두 가지를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51)

 

믿음과 용기보다 중요한 것은 지혜라고 한다.

시인이 찾아다니는 것 역시 그럴 것.

 

내러티브는 인생을 바꾸어주는 것입니다.

'추락'을 '하강'으로, '불행'을 '시련'으로 바꿔주는 내러티브의 도움 없이,

우리가 어떻게 생사의 강을 건널 수 있겠어요.

말하자면 종교는 인간의 힘으로는 건널 수 없는 심연 위에

내러티브의 다리를 놓아주는 것입니다.(66)

 

삶의 고난을 추락, 불행으로 만들지 않고,

이야기를 통해서 하강, 시련의 극복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내러티브의 힘.

이런 말은 힘이 된다.

그런 내러티브를 찾는 일이 곧 글쓰기이다.

 

갓 태어난 아기는 악을 쓰며 울지만,

지켜보는 가족은 박수치며 눗고,

웃어른이 돌아가실 때는 가족들은 통곡하지만,

떠나는 당사자는 웃고 있을지 모르지요.

어떤 부인이 아들이 죽었는데 도무지 슬픈 표정을 짓지 않는 거예요.

어떻게 그럴 수 있냐니까,

그 녀석이 내 허락받고 온 게 아닌데,

허락 안 받고 간다 해서 뭐 그리 섭섭할 게 있느냐고...(90)

 

생사를 '부모 미생전'으로 따지는 일부터,

인생 이야기를 관조하는 것은 모두 글쓰기의 단골 주제다.

 

시쓰는 사람은 아이를 데리고 계단을 오르는 엄마와 같아요.

여기서 아이는 독자지요.

아이가 어떻게 엄마의 보폭을 쫓아가겠어요.

그런데 요즘은 독자가 따라오나 안 오나 돌아보지도 않고 저 혼자 막 가버리는 것 같아요.

시쓰는 사람은 자기가 보고있는 것을 독자는 못본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해요.(130)

 

내가 요즘 시인들에게서 느끼는 감정이다.

혼자서 가버리는 시인은, 버림받을 수 있다.

아이는 길잃으면 울지만,

독자가 돈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이 저의 무엇을 보고 사랑하겠어요.

상을 몇 개 받고, 인터뷰를 몇 번 했다고 그러겠어요?

아니에요. 그건 실제의 저라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들 마음 속의 저라는 자리예요.(133)

 

겸손하기도 하지만, 실제이기도 하다.

시론이자

시를 쓰는 사람들에게 어떤 마음이어야 하는지 지침서 구실도 하는 책이 될 것이다.

 

 

고칠 곳 몇 군데~~~

 

15. 원륭한 인생관... 한자로 둥글 원, 화할 융... 원융 圓融이라 써야 옳다. 원래 음이 '륭'이 아니라 '융'이다.

 

53. 반지름과 원의 넓이처럼,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모르는 것'은 곱절로 많아진다잖아요... 곱절이 아니고 '제곱'인데...

 

90. 윗어른... 웃어른으로 써야 한다. '위/아래'가 대립될 때는 '윗사람/아랫사람'으로 쓰고, 초과나 높은 것을 가리킬 때는 '웃돈, 웃어른, 웃옷(외투)' 등의 '웃-'이 옳다.

 

117. '홍예문'의 한자가 틀렸다. 虹霓 무지개 홍, 무지개 예... 무지개 다리 같은 것을 가리킨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5-09-21 16:1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