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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평점 :
초승/보름/그믐
나는 그믐달을 몹시 사랑한다.
그믐달에 대한 절창은 이미 나도향이 불렀다.
깜찍하게 예쁜 계집 같은 달인 동시에 가슴이 저리고 쓰리도록 가련한 달, 이자
그믐달은 보는 이가 적어 그만큼 외로운 달, 이고,
평화롭게 잠든 세상을 저주하며 머리를 풀어뜨리고 우는 청상과 같은 달, 이라고 극찬했다.
장강명의 그믐달은 “아침에 떠서 저녁에 지거든. 그래서 쉽게 볼 수 없지. 해가 뜨기 직전에만 잠깐 볼 수 있어. 낮에는 너무 가느다랗고 빛이 희미해서 볼 수가 없”는 존재이다. 있지만 존재를 볼 수가 없는... 이 지점에서 그믐은 기억을 닮았다.
과거/현재/미래 또는 남자/여자/아주머니
그런 농담이 있었다. 인간을 세 부류로 나누면... 남자, 여자, 아줌마...로 나뉜다던. 가끔 아줌마 자리에 군인이 끼기도 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익명’으로 등장한다. 주제 사라마구가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익명으로 소설을 전개하듯, ‘익명성’은 현대에 새로운 하나의 범죄 카테고리를 만들 만큼 함축적 의미가 크다. 결국 이름을 밝히지 않는 사람들의 기억이 뒤얽히면서 진실을 밝히는 일은 어려움을 넘어 불가능으로 치닫는다.
우주알에 빙의한 ‘남자’는 미래를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세상은 예측 가능한 것이므로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까지 조작하여 세상을 착각하게 할 수 있다고 믿지만, 미래를 내다보는 그에게 ‘중요한 것은 결말보다 과정이 아닐까?’ 하는 의문은 멈추지 않는다.
이 스토리를 이끌어나가는 인물은 ‘여자’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여자는 고등학교시절 친구였던 남자를 알아보게 되고, 과거에 매달리며 죽은 아들과 남자 사이를 오고간다. 여자의 현재는 ‘밥벌이의 지겨움’으로 대변되는 나날이며, 한 반에 세 명이나 있을 정도로 흔한 이름 만큼이나 자신의 삶에 대한 애착은 희미하다.
이 소설을 판타지에서 범죄추리물로 장르를 넘나들게 하는 인물은 ‘아주머니’이다. 아주머니는 과거에 매여 있으며, 남자의 과거 기억까지 들추어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녀에게서 이미 죽어 실명으로 거론되는 ‘이영훈’을 빼고 나면 껍데기에 불과할 것이다.
거짓말/기억/진심... 격발
각 이야기들은 두 음절로 이루어진 세 단어를 제목으로 전개된다. 다만 끝의 바로 앞에서, ‘너는 누구였어?’로 인하여 길어짐으로써, 목차를 두고 보면 마지막의 바로 앞에서 작은 일탈 또는 파격을 보이고 다시 원위치된다. 마치 획일적인 개미들의 움직임같은 ‘한국이 싫어서’ 한발 내딛으려는 의지처럼...
정말로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일어났던 사실들을 우리가 다 밝혀내는 것이 가능할까? 하고 묻기라도 하는 듯, 소설의 스토리는 오리무중 속을 헤매는데, 여자에게 내재된 삶에 대한 강한 열망을 밖으로 터뜨릴 수 있도록 남자의 마지막 말로 촉발시키는 것이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남기고 싶은 말이 아닐까 싶다. 시지프스처럼 날마다 밥벌이의 비루함 앞에서 무릎꿇는 '여자'같은 독자에게, 그 진심이 전달되기를 강하게 열망하면서...
“지금까지 내가 해온 모든 거짓말들은 다 잊더라도, 이 말만은 기억해줬으면 해. 널 만나서 정말 기뻤어. 너와의 시간은 내 인생 최고의 순간들이었더. 난 그걸 절대로 후회하지 않아. 고마워. 진심으로.”
‘훨훨 날아가고 싶어. 나의 시간을 살고 싶어. 자유로워지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