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를 인양하다 창비시선 391
백무산 지음 / 창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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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를 인양하다...

아, 이 나라를 어쩔꺼나.

이제 '인양'이라는 글자만 봐도 눈시울이 붉어지게 되었으니...

 

  가라앉은 것은 건져올리지 못한다 그것은 항해를 계속하

고있기 때문이다 캄캄한 수심 아래 무거운 정적 속으로 배

는 멈추지 않고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

 

  사실은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거다 아우슈비츠도 731 부대

도 거기서 행한 생체실험으로 얻은 의학 지식으로 수많은

질병을 퇴치하고 죽은 자들보다 더 많은 인류를 구하지 않

았느냐고 공이 7이지 않았느냐고

 

  물에 잠긴 것은 그대로 놔두고 이제 애도도 거두고 정상

사회로 가라고 재촉하고 화를 내고 폭력을 행사하듯이 그

들은 안다 버림받고 가라앉은 것이 정상 사회를 들어올리

는 부력이라는 것을

 

  무엇을 인양하려는가 누구는 그걸 진실이라고 말하고 누

구는 그걸 희망이라고 말하지만 진실을 건져올리는 기술은

존재하지 않고 희망이 세상을 건제올린 적은 한번도 없다

그것은 희망으로 은폐된 폐허다 인양해야 할 것은 폐허다

 

인간의 폐허다 (인양, 부분)

 

노동해방을 부르짖던 '노해'는 이제 인간 사랑을 외치는 쪽으로 갔다.

무산자 프롤레타리아 편에 섰던 '무산'은 아직 인간의 폐허 곁에 머무는가.

 

뒤집어라 그들의 명령과 지시를

그리고 저 고귀한 지시를 따르라, 승객을 버리고

선장과 노련한 선원들이 첫 구조선으로 달아난 그 시각

선원은 마지막까지 배를 지킨다! 구명조끼를 벗어주고

한명이라도 더 구하려다 끝내 오르지 못한 스물두살

4월을 품은 여자 박지영, 그가 최후의 선장이다

그 푸른 정신을 따르라, 뒤집어진 걸 바로 세우게 하는,

죽음을 뒤집는 4월의 명령을!(세월호 최후의 선장, 부분)

 

세월호 이후, 이 나라는 죽음의 골을 향해 전진중인 것 같다.

아니, 뒷걸음질로 나락을 향해 기어드는 형상이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낯을 쳐들고 뱀혓바닥을 낼름거리는 독사들로 가득하다.

그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도저히 인간의 언어가 아니다.

 

새벽 잠결에 듣는 도마질 소리

놋그릇 부딪는 소리

바가지 물 붓는 소리

마른 감나무 가지에 산까치 짧은 날갯짓 소리

 

감은 눈에 비쳐드는 흰빛

깊은 곳에서 뼈를 적셔오는 흙의 온기

꾸던 꿈과 뒤섞여 흩어지는 바람 소리

 

낡은 놋주발에 김 오른 고봉밥

질그릇 보시기에 고추채 올린 백김치

들기름 내 묵나물 찬에 까만 간장 종지

거뭇거뭇한 놋수저 한 벌

 

문틈에 스며드는 솔가지 타는 연기

옻칠 벗겨진 개다리 소나무 밥상

상을 들이고 가는 감물 들인 옷 내

마당 가득 고여드는 푸른 산기운

 

내가 제사상을 받은 걸까

밤길 더듬어 잔설 밟고 오르던 길

질기게 기억을 물고 따라오던 슬픔들

저 길 밟고 간밤에 나의 여럿이 돌아가고

 

저승에서 맞는 신접살림

말간 동치미 국물 그 신맛의 첫날 같은(지리산 그곳, 전문)

 

지나간 시간들의 체취는 온몸을 간질거린다.

이런 기억들을 품어 주어 감사한다.

그리고 청맹과니가 되어

바라보아도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도록 눈 띄워주는 시의 힘을 일깨워줌에 감사한다.

 

여기서 저기 붉은 깃발 손짓하는 지점까지가

비무장지대다

이로써

우리는 무장지대에서 살아왔다(무장지대, 부분)

 

비무장지대... DMZ

그곳을 마치 무서운 곳처럼 생각하지만,

그렇다. 비무장지대가 아닌 곳.

여기는... 핵무기로 무장한 무장지대인 것이다.

그것을 잊고 살았다.

무섭다.

 

빈집을 보면 사람들이 쑤군거리지

사람 떠난 집은 금방 허물어지거든

멀쩡하다가도 비워두면 곧 기울어지지

그건 말이야 사람이 지독해서야.

 

벽과 바닥을 파먹는 것들

기둥을 물어뜯는 밤의 짐승들

쇠를 갉아 먹는 습한 이빨들

사람 사는 걸 보면 질려 달아나지

사람 사는 일이 모질어서야 그건(빈집, 부분)

 

신선하다.

 

  타이어를 껴입고 배를 깔고 바닥을 기며 구걸하던 걸인

이 비가 오자 벌떡 일어나 멀쩡하게 걸어가는 모습에 어이

없는 배신감을 느낀다지만

 

  상인에게 상술은 문제 삼지 않으면서 걸인에게 동냥의 공

정거래를 요구할 참인가 정치꾼들의 쇼는 전략이라는 건가

 

  머리가 땅에 닿도록 굽신대며 표를 구걸하고 신분을 위

장하고 머슴입네 간을 빼줄 듯이 가난한 자의 발바닥이 되

겠다던 정치인들의 계급 위장은 고상한 전략인가

 

  생존을 위해 직립을 포기해야 하는 사람들이 그들뿐인가

진화를 교란하고 기적을 연출하는 인간들이 그들뿐인가

 

  배를 깔고 바닥을 기다 멀쩡하게 일어나는 기적과 숙였던

고개와 바닥에 깛았던 신분을 벌떡 일으켜 세우고 거만한

지배자가 되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도덕적인 기적인가(호모에렉투스, 부분)

 

유추도 이 정도 되면 예술이다.

사기꾼 걸인과

사기 정치인...

걸인을 지탄하는 손가락에 비하면, 정치가에게 향하는 손가락은 조심스럽다.

법은 10,000인 앞에만 평등하기 때문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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