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태어나지 않은 너에게
알베르 자카르 지음, 김주열 옮김 / 도서출판성우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지은이 알베르 자카르는 프랑스에서 인정받는 생물학자란다.
이 책을 읽으면서 프랑스라는 나라의 인문학적 배경을 너무너무 부러워했다.

요즘 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싸고 '국익' 논쟁이 한창이다.
네티즌의 90% 이상이 황교수를 지지한단다.
PD 수첩을 난 보지 않았지만, 일반인의 대응을 볼 때 상당히 객관적이었던 모양이다.
국익을 생각해서 연구를 계속해야 한다는 주장에 난 좀 난감하다.

지금 우리 국민의 의식 수준은 식민지와 독재 개발 시대를 갓 벗어난 '세뇌' 상태 그대로다.
빨간 색만 보면 부르르 떨던 습관은 조금 벗었지만(월드컵 덕분에),
아직도 북한에 호의적인 발언은 큰일난다.
APEC 반대하면 바로 빨갱이고,
전교조도 아직 빨갱이다.

그 이유는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세뇌당한 상태에서) 이 땅에 태어났다'는 명제를 1968년 12월 5일부터 암송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진, 졸업식장에서 교감들이 국민교육헌장을 낭독하고 그랬었다.

민족 중흥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
친일파를 그대로 살려 두는 것도 그 일환이었고,
일제 부역 순사들이 그대로 경찰 고위직이 된 것도 민족 중흥을 위한 것이었다.
미국의 앞잡이들이 정권을 잡은 것도 민족 중흥이 목적이었고,
군인들이 폭정을 가한 것도 그런 목적이라고 역사를 날조해 왔던 것이다.

그런 한국 국민들에게 '우리는'을 벗어난 사고를 하기는 정말 어렵다.
우리는... 하는 무의식적 집단적 광기에 매인 무의식은 이성적, 합리적 사고와 행동을 왕따시키기 십상이다.

난 속내를 알지 못하지만, 황교수 사태를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과학이 세계적으로 발달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지만, 질병의 연구에 가장 어려운 점인 생체 실험은 분명 큰 돈이 될 것이긴 하다.
암을 정복해야 하고, 에이즈를 정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선 말이다.

민족 중흥을 위해서라면 윤리 정도는 우선 순위가 축 쳐저있는 한국에서 그런 실험이 적절했던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돈 되는 사업인데, 한국보다 과학 수준이 훨씬 발달한 나라들이 아직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은 철학적으로, 윤리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어서가 아닐까?

원자 폭탄을 만들었던 최첨단 과학자들이 자기들의 연구에 통석의 한을 머금었던 것을 생각하면...

알베르 자카르의 책은 과학을 소재로 하지만, 그 사고는 정말 철학적이고, 인간의 인식에 다른 지평을 제시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내가 아들에게 주려고 매일 일기 형식으로 책을 만드는데, 혹시 도움이 될까 해서 읽기 시작한 책인데, 얄팍한 처세술이나 전해주는 책이 아니었다.

이 과학자가 바라보는 과학은 정말 <윤리적>이고 <세계 시민>의 입장의 시각이다.

자유주의 시장에서 <유전자 조작>을 통한 씨앗은 농민들을 정말 편하게 만든다.
농약을 치지 않아도 튼튼하게 자라는 벼를 개발하는 유전자 조작.
그렇지만, 문제가 있다. 이 벼들은 다음 해엔 씨앗을 맺지 못한다는 것.
결국 핵심 기술은 소수의 전문가들만이 독점하고 있다는 것.

매일 우리 농민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사람들이 그러면 안된다고 언론은 걱정이 많아 보이지만,
정말 농민의 입장에서 걱정하는 철학자는, 과학자는 보이지 않는다.

현재 많은 아이들이 굶어 죽는 이유는 식량 부족 때문이 아니다.
당장 쓸 수 있는 예비 식량은 있지만,
지역간 분쟁으로 식량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기 때문이다.
... 오늘날 기아는 농업 문제가 아니라 정치 문제다.

이렇게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여주는 과학자가 우리 곁엔 왜 없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민주 노동당이 처절하게 반대하고,
농민들이 탄압받는 현실에서,
내년이면 들어오게 될 외국쌀 앞에서,
도시에 사는 80% 사람들은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
자기의 불편만을 생각하며 집회에 불만을 표시한다.

지금의 쌀 개방 비준 반대는 농업 문제가 아니라 <정치 문제>임을 간과하고 말이다.

황우석 교수 파동도 알고 보면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문제>임이 드러날 것인데...

우리는 민족 중흥의 이름으로 washing된 brain으로(씻어진 뇌, 세뇌) 굳이 그것들은 나와 상관없는 것이라고 위안하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사회에 대한 통찰로 똘똘 뭉친 <교양> 서적 한 권,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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