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두고 읽는 니체 곁에 두고 읽는 시리즈 1
사이토 다카시 지음, 이정은 옮김 / 홍익 / 201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니체 철학의 개론서는 아니다.

자기가 쓰고싶은 이야기들을 쓰는 간간이,

니체의 말에 기대어 삶의 지혜를 얻은 경험을 쓴 책이라 보면 더 가깝다.

 

그래서 니체의 어느 한 책을 풀이한 해설서도 아니고,

니체의 삶이나 사상을 조망한 비평서도 아니다.

그저, 작가의 생각을 조곤조곤 들려주는 틈틈이,

이거봐라, 니체도 이런 말을 하지 않았나.

이런 근거로 들이미는 정도다.

 

그런데 니체의 중심 단어인 '영겁회귀'나 '낙타, 사자, 어린아이' 등의 비유가

적절하게 섞여 쓰이는 것이,

니체를 쉽게 읽는 방법의 하나이기도 한 셈이다.

 

자기보다 능력이 훨씬 부족한 것 같은데도 엄청나게 성공한 사람이나,

만나서 얘기를 나눠보면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데 크게 인정받는 사람을 보면 누구나 질투심이 발동한다.

분노나 질투에 휘둘리게 되면 좋은 점들을 왜곡하거나

긍정적인 것에도 눈을 감는 습성이 생겨 종국에는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한다.

자신을 병들게 하는 르상티망의 싹을 잘라내는 일,

거기서 니체가 말하는 초인으로 가는 길이 시작된다.(40)

 

니체의 초인을 뛰어난 인간, 위인으로 보지 않는다.

호랑이가 된 사나이 이징(나카지마 아쓰시의 <산월기>)의 이야기를 덧대면서,

인간의 약한 부분을 짚어준다.

 

시시포스는 자신의 운명을 묵묵히 짊어짐으로써

결과의 무의미함을 절차의 충실함으로 전환시켰던 것.(101)

 

카뮈의

시시포스의 신화 첫 구절에 나오는 이야기다.

 

단 한 가지 참으로 중대한 철학적 문제가 있다.

그것은 자살이다.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100)

 

참으로 하찮은 일을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무의미한 일을 반복하면서,

본연의 자신의 진면목인 '치히로(千尋)'를 잃어버리고 '센(千)'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니체의 영겁회귀는 불교의 인연설과 다르다.

 

지금의 삶을 다시 한 번 완전히 똑같이 좋다는 마음으로 살아라.(105)

 

인생은 어차피 부조리하다.

출발점은 너무도 균형잡히지 못한 곳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출발점이 어떠하였든, 붓다의 깨달음처럼 인생은 고통이다.

탐, 진, 치...

이들은 마치 저팔계처럼 탐욕스럽게, 손오공처럼 성내며, 사오정처럼 어리석게 인간을 살게 한다.

 

영겁회귀는 미래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신의 천국을 약속하지 않는다. 신은 죽었으니.

오로지, 지금, 영겁회귀한다 해도 지금 나는 만족한다는 자세를 말한 모양이다.

 

지금 내가 희생하는 오늘의 고난은

미래의 행복과 즐거움과 부유함을 위한 것이라고 착각하며 산다.

그렇다면, 오늘 왜 행복하고 즐겁게 누리며 살지 못하는지...

 

인간은 곧 뇌라는 도식이 일반화되어가는 오늘

두뇌만으로는 그 어떤 것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니체의 지혜를 대지의 호흡을 통해 느껴보자.(153)

 

편견과 편견이 날카롭게 부딪치는 커뮤니케이션은 결국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는 극단으로 치달아 끝내 폭발한다.

이것이 바로 숙성 기간이 결여된 지식을 그저 타인에게 과시하고 싶어 안달 난 사람들이 운영하는

사이트들이 오래 지속되지 않는 이유다.(161)

 

인간의 향상은 양적 팽창보다는 질적 깊이에 있지 않을까?

향상심은 곧 숙성된 맛, 성숙함에서 느껴지는 것이 아닐는지...

 

사람은 항상 껍질을 벗고 새로워져야 하고

항상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한층 새로운 자기를 만들기 위한 탈바꿈을 평생 멈추지 마라.(166)

 

날마다 아이처럼 향상하려는 즐거움을 안고 사는 존재라면,

삶이 배움의 축제라는 것이다.

낙타처럼 참고 견디며 우직하게 나아가는 걸음은 허무 앞에서 좌절한다.

사자처럼 울부짖는 최고 의식 역시 허무 앞에서는 무너진다.

어린아이처럼 즐거움으로 하루하루를 영위하는 법.

 

아~ 슬퍼진다.

 

창조적인 일을 하든

평범한 일을 하든

항상 밝고 가벼운 기분으로 임해야 순조롭게 잘 풀린다.

그래야 사소한 제한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 자유로움이 생기기 때문.

평생 이런 마음을 지켜나가면

그것만으로도 많은 일을 이루는 사람이 될 것.(179)

 

삶의 과오는 너무 진지한 데 있다.

그래서 저팔계처럼 욕심내고, 손오공처럼 화내고, 사오정처럼 어리석어진다.

 

마티즈를 폐차시킨 국정원이나,

친일파 조상 이야기 고만하자는 김무성이나,

너무 오래 생각하면 성질만 나빠진다.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하여는 지나치게 성질내지 말 일이다.

그런다고 정말 성질이 안 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스리려 끝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내게 맞는 삶의 방법론을 찾기는 어렵다.

타인의 방식이 내게 맞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

왜 그일을 하려 하고, 왜 그렇게 되고 싶고, 왜 그 길로 가려하는지,

내면으로부터 평가기준을 갖추지 못해서 답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왜?라는 의문부호에 스스로 답을 제시할 수 있어야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알게 됨으로써,

이제 그 길을 가는 일만 남게 되는 것이다.(216)

 

어린아이들의 호기심처럼 질문하고,

남의 기준으로 답을 찾지 말라는 말.

 

참 쉽고 당연한 말들이지만, 이렇게 들려주니 옳고 또 옳다.

 

니체라고 하면 그 짙은 털보 수염만 떠올리지 말고,

참 쉽고 편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읽어볼 만 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 다음에 곧장 <차라투스트라~>나 <인간적인~>을 주워들었다가는

어린아이처럼 베고 잘 게 뻔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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