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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내가 있었네 (반양장)
김영갑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은 관광지가 되어 버려 사라져 버린 제주의 평화와 고요가 그의 사진 안에 있다. 스틸 컷 속에 미라가 되어...
그의 사진에는 제목이 없다. 제목을 거부하는 사진 작가. 그렇지만 작품이 말을 한다. 그의 사진 모두의 주제는 제주이고, 제목도 제주다.
제주의 들, 오름, 바다, 파도, 풀과 꽃들, 구름과 햇살, 안개와 비... 이 모든 제주의 자연이 그의 사진에 오롯이 담겨있다. 이것들의 이미지가 분위기로 기억되어 저장되어 있다.
아름다움은 발견하는 자의 것이라던가. 제주에 사는 사람들도 느끼지 못하는 지순한 아름다움을 뭍것인 그가 이렇게 담아내게 된 배경에는 말로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이 숨었다.
삽시간의 황홀을 사진에 담기 위해서 비내리고 태풍 불고 안개 자욱한 제주 섬의 풍광 속에 한 점이 되어서 그는 참고 기다린다.
그 몰입의 황홀함을 다 누렸음일까... 그에겐 근위축성 측삭 경화증(루게릭)이란 병이 찾아와 이제 카메라조차 들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한라산의 옛이름이라는 <두모악> 전시실을 꾸몄건만, 거기 전시된 파노라마 사진의 제주만이 말을할 뿐, 그는 이제 아무 말이 없다. 한 겨울에 숨어있는 제주의 봄을 미리 찾아 찍어 두었던 김영갑. 제주섬 전체를 명상 센터로 만들고 싶었던 그의 꿈은 두모악에 살아 있건만, 그의 숨은 매일 잦아든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난한 삶을 제멋에 사는 사람들의 예술혼은 늘 고달프다지만, 그의 경우엔 한없이 안타깝다. 그러나, 그 파노라마의 제주 사진들을 대하고 있노라면, 한반도와 뭔가 어울리지 않는, 뭔가 다른 구석이 많은 유전자를 가진 섬, 제주를 오롯이 남겨 두었음에 감사해야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