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 - 법정과 최인호의 산방 대담
법정.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병이 든 최인호가 법정 스님과의 대화를 정리한 책이다.

조용조용하니 이야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책을 읽고 있는 방에서 은은한 차향기가 퍼지는 듯 싶다.

서권기 문자향...

책에서 기운이 서려있고 문자에서 향이 퍼진다.

 

박물관의 도자기나 그림...

그것들이 내 소유였다면 잘 보관하고 도둑맞지 않게 간수하느라 바라볼 여유가 없을 거예요.

거기 그렇게 있기 때문에

나는 필요할 때 눈만 가지고 가서 보고 즐기면 되는 것.(49)

 

스님의 무소유는 참으로 울림이 크다.

 

우리는 몇 생 만에 이렇게 만났는데

금생에 잘해야 내생에 또 좋은 낯으로 만나지~(66)

 

이러면 싸울 일이 없겠다. ㅎㅎ

 

주님 제가 늙어가고 있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제발 말 많은 늙은이가 되지는 않게 해 주십시오.

특히 아무 때나 무엇에나 한마디 해야 한다고 나서는

치명적인 버릇에 걸리지 않게 하소서.(91)

 

천주교 신자인 최인호가 수녀님의 기도를 옮긴 부분이다.

나이들면서 추해지는 것은 고집부리는 것이고, 말 많은 것이다.

 

모든 글이 그렇지만

소설의 경우도 두 번 읽을 가치가 없는 소설은 좋은 소설이 아니다.(95)

 

세상이 바빠서 소설을 두 번 읽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법정 스님이 좋아하던 어린 왕자처럼, 읽을 때마다 새로운 소설이 흔치 않다.

 

저는 정면승부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다시 태어나도 지금 이생에서도 끝까지 창작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고요.

문학상의 심사위원도,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강의하는 사람도 아닌,

글 쓰는 사람으로 사는 일, 저는 창작이 제 남은 삶을 채우길 바랍니다.(109)

 

심사위원~ 그 참 편한 자리인가 보다.

 

우리 민족의 좋은 화두가 있습니다.

심봉사가 공양미 3백석을 바치고도 눈을 못뜨다가,

왕비가 된 심청이가 벌인 맹인 잔치에 가서 눈을 번쩍 뜨지 않습니까?

사람은 모두 공양미가 있어야만 눈을 뜬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게 바보의 벽이겠지요.

공양미 없어도 뜰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본다면

우리이 삶은 기적의 연속이지요.(133)

 

어두운 방 안에 촛불을 켜면,

한 순간 방 안이 환하게 변하듯,

공양미 따위, 어떤 조건 따위 필요없다는 말이다.

 

참된 지식이란 사랑을 동반한 지혜겠지요.

반면 죽은 지식이란 메마른 이론이며 공허한 사변이고요.(135)

 

스님도 외롭냐는 질문에...

 

그럼요.

사람은 때로 외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외로움을 모르면 삶이 무디어져요.

하지만 외로움에 갇혀 있으면 침체되지요.

외로움은 옆구리로 스쳐 지나가는 마른 바람같은 것.

그런 바람을 쏘이면 사람이 맑아집니다.(142)

 

참 맑은 말이고, 생각이다.

요즘 <느리게 살기>가 관심을 받는다.

 

빠삐용에 그런 말이 나오거든요. <너는 시간을 허비한 놈이다>라는 꿈을 꾸는...

느림이란 <여유있게, 침착하게>이되 시간은 허비하지 않는 것.

그러니까 시간을 허비하지 않을 때눈 분주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꿀벌처럼, 분주하면서도

사고와 의식은 모든 것을 관찰하는 느리게..

그러니까 <느리게>란 <충분하게>란 뜻이겠지요.(148)

 

우리의 근대에서 얻은 <빨리빨리>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걷어찬다.

느림은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다.

분주한 삶 속에서도 여유있고 충분히 침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통찰.

 

죽음은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대신 내가 지금 이 순간순간을 얼마나 나답게 살고 있는지가 과제지요.(177)

 

얇은데 12,000원이나 한다.

비싸보이지만,

맑은 바람 쏘이는 데 그 값이면,

결코 비싸지 않다.

 

책값 역시 그렇게 상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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