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로 가는 길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arte(아르테)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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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인이고 탐구자이고 고백자입니다.

내게는 하나의 사명이 있습니다.

세계를 이해하고 견디도록 돕는 일 말입니다.

그것이 그들은 고독하지 않다고 위안을 주는 것뿐일지라도.(서간집, 129)

 

헤세의 글은 요즘말로 하면 멘토가 되고 힐링이 된다.

가난한 나라이던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멘토들이 없을 때, 그들은 헤세를 읽었다.

 

정여울이 헤세의 흔적을 더듬으며 여행한 길을 따라가며

사진과 헤세의 글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1장에서는 헤세가 태어난 곳 칼프로 여행을 하고,

2장에서는 헤세의 작품들을 정여울이 읽어준다.

3장은 헤세가 잠든 곳, 몬타뇰라로 가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창밖에는 별들이 바삐 움직이고

모든 것이 불빛을 뿜어대는데

이토록 깊은 절망에 빠진 나의 곁에

바로 네가 있어주다니.

이토록 복잡한 인생살이 속에서

너만은 하나의 중심을 알고 있나니.

그리하여 너와 너의 사랑은

언젠 내 곁에서 고마운 수호신이 된다.(405, 니논을 위하여)

 

삶은 절망의 구렁텅이의 연속이다.

날마다 손오공처럼 화내고, 저팔계처럼 탐욕을 부리고, 사오정처럼 어리석게 보낸다.

별을 바라보지 못하고,

내 곁의 수호천사인 너를 발견하지 못하고.

 

헤세의 지병에 도움을 주려고 그림을 권해

수채화를 그렸다는데 그의 그림은 단순한 미감이 살아있다.

단순한 수채화의 색감이 마음을 밝혀준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233)

 

자라나는 청년기에 이 문장을 읽고 가슴뛰지 않은 사람이 있었으랴.

허나, 인생에서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는 일은,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며 나이만 먹어 간다.

인생은 그러기 쉽다.

 

다른 사람이 되는 것,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모방하고 그들의 얼굴을 자신의 얼굴로 여기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301)

 

자신이 되는 일.

그것이 데미안과 나르치스와 싯다르타의 공부길이 아니었을까.

다른 사람의 욕망에 맞추어

자신의 욕망을 꿈이라 착각하며 사는 동굴 속 우상을 섬기는 존재들에게...

헤세는 조용하고 나직한 웅변을 들려준다.

 

사랑을 받는 것은 행복이 아니다.

누구나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

그러나 사랑을 하는 것, 그것은 행복이다.(클라인과 바그너, 326)

 

유치환의 시구절이 여기서 겹친다.

아마도,

깃발처럼 그녀에게 날아갈 수 없었던 유치환은,

헤세의 자유분방함을 무척 부러워했나보다.

 

그는 사랑을 하면서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할 때 자신을 잃어버린다.(데미안, 377)

 

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유치환, 깃발)

 

이렇게 외칠 때,

사랑에 대한 동경과 좌절 사이에서 그는 얼마나

아우성의 나날들을 보냈을 것인지...

 

사랑하는 행복.

그러면서 자신을 발견하는 참 사랑.

고전은 읽을수록 새로운 구절을 만나게 되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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