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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ㅣ 문학동네 시인선 54
이규리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5월
평점 :
나이가 먹으면서 '최선'이라는 말이 싫어졌다.
어차피 태어난 환경에 따라 출발점이 천지차이인 것을, '최선'을 다해 바꿀 수 있는 것이 무에 있나 싶어서이다.
이규리의 이 시집은 삶을 거쳐온 관조의 시선이 짙다.
시집 제목을 누가 붙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저런 제목의 시도 없고, 이 시집의 주제로 알맞아 보이지도 않는다.
1부. 돌려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2부. 빌려온 빛에 지나지 않습니다.
3부. 멀리 있는 것에 관하여서입니다.
이런 소제목도 좀 어울리지 않는다.
도망가면서 도마뱀은 먼저 꼬리를 자르지요
아무렇지도 않게
몸이 몸을 버리지요
잘려나간 꼬리는 얼마간 움직이면서
몸통이 달아날 수 있도록
포식자의 시선을 유인한다 하네요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외롭다는 말도 아무 때나 쓰면 안 되겠어요(특별한 일, 부분)
요즘 뉴스도 보지 않고, 인터넷 기사도 읽지 않으려 애쓴다.
억지로 노출되기도 하지만 눈을 질끈 감는다.
아이들 생일 축하하러 들어간 페이스 북에서 별 더러운 꼴을 다 본다.
도마뱀같은 인간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영화가 있었다. "V"
도마뱀은 살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만,
인간들은 타인을 억압하기 위하여 자신을 위장한다.
짐승만도 못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다.
이 시집에서 고대로 베끼고 싶은 시가 한 편 있다.
초록 물결 사이 드문드문 비치는 보랏빛 오동꽃 보며
라고,
그가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상행선 기차, 검진하러 가는 길
미친 복사꽃 지나
오동꽃 문드러지는 한나절 타고
짓이긴 꽃물 구성지게 번진 한판 세월
본떠놓은 간, 울긋불긋한 간
한 달에 한 번
꽃잎 같은 년, 다녀간 뒷자리 어지러이
그거 판독하러 가는 길
판판이 기죽는 일
내 다 안다
별유천지에 모다 아프다 아프다 하는 것들
저리 붉고 어여쁜 입술들
꽃불에 닿은 자리라는 걸(시 전문)
간이 상했나보다.
상행선 기차, 검진가는 길...
그 마음이 어떠할까.
누군가,
초록 물결 사이 드문드문 비치는 보랏빛 오동꽃 보며...
라는 문자를 보내는 사람이 있어,
세상은,
저리 붉고 어여쁜 것이다...
차 안에 앉아서 비가 따닥따닥 떨어질 때마다
젖고, 아프고,
결국 젖게 하는 사람은
한때 비를 가려주었던 사람이다
삶에 물기를 원했지만 이토록
많은 물은 아니었다
아직 건너오지 못한 한사람
이따금 이렇게 퍼붓듯 비 오실 때
남아서 남아서
막무가내가 된다(많은 물, 부분)
비만 봐도
따닥따닥 소리를 들으며
막무가내가 되는 그 마음...
한 줄 문틈을 그은 불빛이 빗장 같아
불 켜진 아이 방 앞에 서서
늦은 시각을 벌컥 열지 못하겠다
아버지가 그립지만 같이 있고 싶단 뜻은 아니에요
그건 내 말이었다
꽃들이 언제 피어야 할지 가지에게 물은 적 없듯이
저 아이의 새벽, 스탠드 불빛은
쓸쓸한 먼길일지 모른다
언제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방문 열고 나오는 아침이 있고
그러면 나는 또 짐짓 이마를 짚으며
음, 음, 날씨 얘기나 꺼낼지도 모른다 ( 꽃나무의 미열, 부분)
어린 꽃나무는 자라면서 자주 앓는다.
새벽, 쓸쓸한 먼길...
삶의 스산함이 소름끼치게 느껴진다.
삶은 이렇게 상처투성이다.
그래서 아프다.
그래도 아프다고 못하고
이렇게 미열이라고 쓴다.
그런 시인이 안쓰럽다.
그게 최선이라고 말하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