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단 한번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0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엊그제 장영희 교수의 문학 산책을 읽었다. 오랜만에 남구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렸는데, 젤 먼제 수필 코너에 가서 ㅈ 칸을 찾았다. 장영희 선생님의 내 생애 단 한번이 삐죽이 고개를 내밀고 마중나와 있었다.

녀석, 그렇게 반가워하기는... 기특하다.

집에 와서 빈집에 욕탕 가득 따끈한 물을 받아두고 반신을 담근 다음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정말 하필이면, 하필이면... 이런 생각이 자꾸 든다.

선생님을 한 번도 뵌 적도 없고, 며칠 전까지 이름도 모르던 분의 글을 읽으면서 자꾸 눈물이 났다. 땀이 눈에 들어가서 눈이 따갑기도 했지만, 세상, 참 불공평하다.

왜 하필이면, 소아마비를 이기고 그토록 밝은 삶을 살려는 분께, 암종을 길러 주시는 거란 말이냐.

의학 서적을 보면, 누구의 몸에든 암세포가 있고, 발현될 조건만 갖춰지면 악성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고는 하지만, 열심히 산다고 스트레스 받기는 부정을 밥먹듯 저지르는 정치가나 욕심많은 자본가도 늘 스트레스에 살지 않더냐. 그런데, 정치가가 무슨 암 걸리는 걸 보긴 참 어렵다. 정치가들은 암에 대해서도 좀 정치가 가능한 걸까?

참 솔직한 양반이다. 천성이 어둡지 못한 사람이리라.

아직도 소녀같은 맘씨를 갖고 사는데, 삶은 혹독했다. 목발 짚은 것만으로도 거지에 가까웠고 혼자 거동이 불편했기에 학교에 입학 시험을 치르는 것 조차도 불가능했던 이.

외국인이 운영하는 서강대가 아니었더면 대학에 입학조차 못했을 그. 하긴 그 아버지가 서울대 교수쯤 되었으니 그토록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 다녔으리라. 먹고 살기 바쁜 이 땅의 장애자 부모들은 자기 아이가 아무리 재주가 있어도 길러 주기 어렵다. 그가 조금 조건 좋은 집안에 태어나서 산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멍들어 퍼렇게 어혈진 상채기 조차도 연보랏빛 파스텔톤으로 고와 보인다. 나이를 먹어도 늘 노란 국화처럼, 빨간 장미나 탐스런 튤립처럼 밝은 성격이 톡톡 튀어 나온다.

영문학을 하는 이였기 때문에, 늘 영문학의 명구들을 들먹이는 선생님에게, 시련은 희망이고, 희망을 버리고 좌절하는 죄악을 저지르지 않기를... 어렵기 때문에, 그것을 이겨내는 장영희 선생님이 되길 바랄 수밖에 없는 글들을 읽었다.

왜, 하필이면 이 선물을 나에게 주는 건데? 하고 순진하게 묻던 조카녀석처럼, 하느님께 물어 보실 것이다. 왜 하필이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행복한 시점에서 또 한 번의 시련을 주시는 것인가 하고...

결과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하필이면 암종이 방사선 치료에 그렇게 잘 응답해서 고요히 잠들어 버리기를... 하필이면 적절한 때에 적절한 치료로 건강해 지시기를... 하필이면...

거실에서 최진실이 지르는 악다구니에 마음이 아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